[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성(姓)도 바꿀 수 있다

성씨

우리나리에서 성(姓)을 바꾼다는 것은 성(性)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절대 불가한 일임을 장담할 때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성을 갈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이제는 하리수처럼 성전환을 해서 호적상 성별정정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성을 바꾸는 일 역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성을 바꾼다는 것은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양자를 데리고 와도 성을 바꾸지 않았다. 제사를 지낼 장손이 없어서 양자를 들일 때는 대개 방계혈족에서 입적했으니 이런 일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내시집안이다. 이들은 다른 가문에서 양자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양자로 갔더라도 양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성을 그대로 사용했다. 따라서 애비와 아들과 손자의 성이 각각 다른 ‘하나의 집안’이 만들어졌다. 성씨로 대표되는 가문을 잇는다기 보다는 ‘내시 가문’을 잇는다는 의미가 더 컸던 것으로 사료된다.

2005년 민법이 개정되고 2008년 호주제도가 폐지되면서 우리나라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녀의 성과 본은 아버지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때에 따라서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도 있다.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모의 동의에 의해 변경할 수도 있다. ‘친양자제도’도 신설되었다. 양자는 종전의 친족관계를 종료하고 양친과의 친족관계만 인정하며 양친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하는 제도다. 이러니 반드시 친부의 성을 따라야만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게 되었다. 살다가 이름도 바꾸고 성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일본의 성

일본은 전국에 약 30만 종류의 성이 있다. 우리나라가 약 250종류, 중국이 약 3500종류의 성이 있는 것에 비해 엄청난 숫자다. 학교 다닐 때 한 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는 있어도 같은 성을 가진 친구는 없었으니 우리랑은 사뭇 다르다. 사토(佐藤), 스즈키(鈴木), 다카하시(田橋)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성이라고 하나 한 반에 둘인 경우도 흔치 않았다.

1870년 메이지 정부는 근대국가를 지향하면서 평민도 성을 가지도록 허락했다. 육군성(陸軍省) 등에서 개개인을 식별해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일본은 비로소 전국민이 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무사나 귀족 등 소수 지배층만이 성을 가지고 있어서 특권계급의 상징이었다.

인디언은 개개인의 특징을 가지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늑대와 춤을’ ‘주먹쥐고 일어서’ ‘열마리 곰’ 같은 이름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지형이나 직업을 가지고 성을 만들었다. ‘다나카(田中)’는 논 가운데 살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고, ‘와타나베(渡?)’는 뱃사공이고, ‘기노시타(木下)’는 나무 밑에 사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재미나고 특이한 성도 많다. 최근 만난 사람 중에는 ‘가네모치(金持, 부자)’라는 성이 있어서 정말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름은 ‘가네모치’입니다만 안타깝게도 가네모치(부자)는 아닙니다”는 말을 해서 크게 웃었다. 친구 중에는 ‘시마’라는 성을 가진 자가 있다. ‘시마’는 섬이라는 뜻이고 대개 한자로 ‘섬 도(島)’를 쓴다. 그런데 이 친구는 ‘강중(江中, 강 한가운데)’이라고 쓰고 ‘시마’라고 읽는다. 아마도 여의도나 파리의 씨테섬과 같은 곳에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명암을 주고받을 때는 “○○상 이시군요”라고 상대의 이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른바 한자의 독음이 상식선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橋下, 하시시타, 하시모토

위안부, 독도 등에 관한 망언으로 연일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는 일본 유신회의 대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의 성 ‘하시모토’에 관한 일화도 특이하다. 그의 성은 원래 ‘하시시타’였다. ‘다리 교(橋, 하시)’에 ‘아래 하(下, 시타)’를 ‘하시시타’라고 읽는 건 특별한 게 아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나자 모친은 ‘하시시타’를 ‘하시모토’로 바꾸었다. ‘하시시타=다리 밑’을 헤매고 다니는 이미지를 가진 성이라서 ‘하시모토=다리 옆’에서 신중하게 살아가기 바란다는 마음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하나의 한자에 하나의 독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래 하(下)’는 ‘시타’ ‘시모’ ‘모토’ 등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중 ‘밑’이라는 뜻이 두드러지는 ‘시타’가 아니라 ‘하시노 다모토=다리 옆’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하시모토’로 바꾼 것이다. 피차별 부락에 살았던 ‘하시시타’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은 ‘하시모토’라고 성을 바꾸고 부락을 떠났다는 후담도 전해진다.

일본 여자들은 결혼하면 대개 남편의 성을 따른다. 자신들이 원하면 부모와 다른 성으로 바꿀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하나의 가족은 하나의 성을 쓴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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