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레미제라블, 여섯 번째의 만남 그리고 무사도

<그림=박은정>

오늘 모임에도 화제의 중심에 <레미제라블>이 있었다. 개봉하고 두 달이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상영하고 있다니 놀랍다. 2556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완독했다는 이가 “소설이 훨씬 재미있다. 영화는 몇몇 등장인물 중심으로 사건이 집중되지만 소설은 수많은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개별적으로 19세기 초의 프랑스를 그리고 있다”며 빅토르 마리 위고(1802~1885)의 <레미제라블>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터득했다는 얼굴로 거들먹거린다. 그래도 5권이나 되는 그 책을 선뜻 잡을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레미제라블>은 결코 혁명과 폭력 중심의 작품이 아니며 특정 정파를 옹호하는 정치 소설도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 모인 사람들이 80년대 학번의 사람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개봉된 탓인지 후반부 바리케이트 장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마리우스를 두고 ‘강남좌파’라고 일컫는가 하면, 1980년 광주를 떠올린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각종 예술의 비평가로 <르뷔 드 파리>의 편집장이기도 했던 테오필 고티에(1811~1872)는 “<레미제라블>은 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상황과 자연에 의해 창조된 작품”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1789년 대혁명 당시 프랑스의 국고는 바닥나고 과도한 세금징수와 자연재해로 민중의 삶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반면 귀족과 성직자들은 기득권 유지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 1848년 2월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 노동자와 학생들의 봉기에 따른 혁명적 분위기는 위고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콘서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리듬을 흥얼거리면서 ‘억압된 사람을 위한 노래’니 ‘억압에 항거한 민중 혁명’ 운운하는데 여하튼 노래는 좋다. 사실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원작 소설을 가지고 뮤지컬이 만들어진 것은 80년대의 일이고, 이번에 그것을 그대로 영화화한 셈이다. 그러니 원작의 휴머니즘적 감동보다는 무대와 노래에 더 초점이 맞추어졌다. 총 2부로 이루어지는데 2부는 온통 혁명 이야기다. 그러니 뮤지컬이 갖는 매력은 원작 소설과는 다른 느낌과 감동을 더하고, 영화 역시 소설과는 다른 감동을 품고 있다.

뮤지컬이 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런던행 비행기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 한 친구가 DVD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당장 빌려보기로 했다. 엄청 기대하면서 볼륨을 올리고 자리를 잡았다. 1995년 ‘뮤지컬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콘서트’ 때의 것이다. 무대가 참 간단하다. 오케스트라가 무대 후반부를 차지하고 그 앞에 배우들이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다가 자신의 순서가 되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어떤 화려한 무대장식도 배우들의 움직임도 없다.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의 열창만이 무대를 채웠다. 그래서일까, 감동이 더 선명하다.

이야기 전개는 영화를 통해서 숙지되었고, 장면 장면에 대한 이해는 이미 다섯 번의 만남 속에서 해석되었다. 미리엘 신부의 사랑과 용서, 장발장의 희생과 봉사, 자베르의 깨달음과 성찰…, 이런 것들을 읽어나가는 사이에 나는 그 저변에 깔려있는 ‘구원’ 그리고 ‘신(神)’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여섯 번째의 만남, 여섯 번째의 느낌이다.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

동시에 일본 근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교육자 니토베 이나조(新渡? ?造, 1862~1933)가 <무사도(Bushido: The Soul of Japan)>를 집필하게 되는 이야기를 연상했다. 그는 미국과 독일에서 공부했으며 일본의 세계화, 근대교육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어느 날 벨기에의 법학자 라블레와 이야기를 나누다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특별히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이에 종교교육이 없다면 어떻게 도덕교육을 받을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니토베는 어릴 적부터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자신의 도덕적 관념이 어디서 온 것인지 고민했고, 그 답을 무사도에서 찾는다. 서양의 도덕교육이 전적으로 종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반면, 일본인의 도덕적 관념은 무사도에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영어로 집필한 책이 바로 <무사도>이다.

니토베는 무사도의 뿌리를 불교·유교·신도에서 찾았고, 무사도의 덕목으로 의·용·인·예·성·명예를 내세우면서 풀어나갔다. 서양의 해박한 지식을 저변에 깔고 ‘무사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일본의 정신세계를 서양에 알리는데 성공했다. 이 책은 훗날 역으로 일본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인도, 프랑스, 노르웨이, 폴란드 등에서도 번역되어 퍼져나갔다.

니토베가 일본의 정신을 무사도에서 찾고자한 시발점은 바로 서양의 종교였다. 위고는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이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 속에서 죽을 것이다. 진리와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바로 신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남기니 그들의 관을 만드는 데 쓰이기 바란다. 교회의 기도를 거부한다. 바라는 건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단 한사람의 기도다”는 유언을 남겼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박애주의적 세계관과 인간애 그리고 희망과 구원을 담은 <레미제라블>의 구심점은 역시 ‘신’을 향한 몸짓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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