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휴대전화와 지하철 에티켓

<그림=박은정>

산행

좋아하는 후배 한 놈이 몸을 담고 있는 코리아글로벌이라는 단체에서는 매달 한번 ‘남북공동산행’을 하는데 이번 달에는 북한산을 간다고 했다.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무거웠다. 어떤 핑계를 대고 가지말까 꾀를 부리고 있는데, 남편이 같이 가겠다는 말에 등산복을 찾아 입었다. 산행을 할 때 나는 가능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 모자도 수건도 챙기지 않고 빈손으로 달랑달랑 따라간다. 앞으로 볼록 나온 아랫배 뒤로 두둑한 엉덩이 이거만으로도 나의 산행은 힘겹다. 토끼와는 반대로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은 고로 산을 오를 때는 정말 힘들다. 하산할 때는 깡충깡충 뛰어서 내려오지만.

그래도 주머니에 신용카드 한 장과 핸드폰을 챙기고 지퍼를 올렸다. 어찌되었건 이것만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비라고 천원짜리 몇장 주머니에 넣고 따라다닌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 하산하고 차라도 한잔 한다면 그래도 찻값은 내야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핸드폰….

휴대전화

언제였던가 이런 광고가 있었다. 멋진 양복의 신사 한석규가 노승과 함께 대나무 숲속을 조용히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벨 소리가 울린다. 뚜~하고 전원을 끄는 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는 대사가 흘러나온다. 그때까지만 해도 핸드폰이라는 기계는 나에게 이해 가능한 물건이었다.

최근 이런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역시 대나무 숲을 노승과 신사가 거닐고 그 옆을 젊은 스님이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여기서 “세상은 바뀌는 것이 진리”라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젊은 스님은 휴대전화를 꺼내어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소리 내어 웃는다.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는 가끔 즐기셔도 좋습니다”는 내레이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스님은 바로 그 유명한 글로벌 스님, 혜민스님이시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휴대전화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이제는 일정한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그런 기계가 아니다. 인터넷과 이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가능케 한다. 이거 하나면 나의 모든 정보를 담을 수 있고, 나는 이것을 통해서 세상과 통한다.

지하철 안 사람들

지하철 안 사람들은 앉은 사람이나 선 사람이나 휴대전화와 씨름 중이다. 문자를 보내는 사람, 글을 읽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옆자리의 꼬맹이는 게임 삼매경이다. 내 앞의 여고생은 손잡이에 매달려 양재에서 충무로 오는 내내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기말고사를 망쳤고 부모님과는 냉전중이고 오늘은 친구랑 만나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건너편 자리의 할아버지 “야~, 죽일 놈! 오랜만이다”면서 큰 소리로 대구를 한다. 아마도 반가운 사람으로부터의 전화인 모양이다. 이런 일들은 지하철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인 고로 누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다들 나만의 휴대전화 세계에 빠져있다.

일본은 지하철 역사와 플랫폼에서만 통화가 가능하고 터널 구간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지하철 차량 안에서의 통화는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라는 이유로 지하철회사들이 터널에 전파중계기 설치를 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안으로 도쿄, 나고야, 오사카 등 일본 대부분의 대도시 지하철 터널 구간에서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해질 것 같다. 일본통신업체들이 지하철 전 구간에서 휴대전화 이용이 가능토록 전파중계기를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작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트위터를 통해서 지하철회사에 중계기설치를 요구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지하철회사는 승객이 조용하게 지하철을 탈 권리를 말하면서 묵묵부답이었지만 도쿄도가 업무의 효율성과 국제경쟁력을 내세워 찬성하자 지하철회사들이 입장을 바꾸었다. NTT 등 다른 통신회사들도 잇따라 참여의사를 밝히고 중계기설치비용은 통신사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일본의 지하철에서는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지하철 안입니다. 곧 연락드리겠습니다’는 문자메시지만 보냈다. 노약자석 부근에서는 전원을 끄고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임신부 등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전파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 일본사람이지만 혹 핸드폰을 들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주의를 주는 어르신도 계신다.

세상은 바뀌었다. 더 많이 바뀔 것이다. 일본 지하철 에티켓도 이후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나를 위해서 상대를 위해서 휴대전화를 잠시 꺼둘 수 있는 여유는 이제 옛말이 되는 것일까…?

One comment

  1. 이렇게 예의바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남아 국가를 점령하려 했던 것은 당시 유럽 열강들의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함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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