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연초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신정’은 그냥 하루 쉬는 날에 불과하다. 대치동 학원가는 쉬지 않고, 독서실도 문을 여니 특별한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1월 2일부터 바로 일터로 나가야 하고, 물론 ‘시무식’ 같은 건 하지만 그게 ‘새로이 맞이하는 한해’에 대한 어떤 감동이나 떨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조금은 감정을 잡아보려고 이른 아침에 떡국을 끊이지만, 잠이 부족한 아이들은 좀 더 자고 싶다고 불만스러운 얼굴이다. 그렇다. 우리네 설은 한달 하고도 열흘은 더 기다려야 한다. 2013년의 설은 2월 10일이 그날이다.

그렇다면 2월 10일, 그러니 음력 1월 1일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감동이나 떨림이 있는가? 신정보다는 분주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달력은 벌써 2월, 시무식을 하고 한달이 훨씬 지난 일터는 벌써 훌쩍 먼 곳으로까지 달려왔고, 겨울 끝자락이라 눈도 녹고 마음도 많이 녹아있는 시간이다.

사실 결혼 후에는 시댁 가는 차표 구한다고 며칠 전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이들 챙겨서 내려갔다 올라오면 그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이었는지, 어떤 행사였는지 아무런 감동 없이 연휴는 끝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진다. 다음날부터는 역시 똑같은 일상이 시작되고 어머님이 싸준 차례 음식으로 몇 번 상 차리고 나면 3월 새 학기가 시작된다. 2013년 열두 달 중 두 달이 지난 후다. 세상은 곧 1분기 결산을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일본에서의 새해맞이 의식

일본은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문명개화를 시도했고, 1872년 태음력을 폐지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모든 행사를 양력에 따랐다. 새해를 시작하는 설 역시 양력 1월 1일이 그날이다. 음력설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다.

관공서나 일반기업은 보통 12월 28일에 종무식을 하고 1월 3일까지 설 연휴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 불빛으로 장식된 거리는 28일을 전후해서 소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가도마쓰(門松)’와 같은 설 장식물로 바뀐다.

긴 연휴인지라 대청소를 시작한다. 뒷마당 창고부터 뒤지기 시작해서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한다. 어쩌다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발견하면 추억에 잠겨 잠시 걸레질을 멈추고, 상자 속에서 지인들과 나눈 편지를 발견하면 다시 읽어 보느랴 시간이 훌쩍 지나는 것도 잊는다. 이제는 버려야지 하면서 한구석으로 쌓아두는 물건들도 결국 다시 창고 속 한쪽으로 슬쩍 집어넣고는 문을 닫는다.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다보면 신기하게도 가슴속 구석구석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소홀했던 사람을 기억하고, 서운했던 사람을 용서하며, 평온한 일상에 감사한다. 그리고 연하장을 준비한다. 이메일, 휴대폰 문자로 인사를 대신하면서 연하장 같은 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일본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연하장을 주고받는다. 12월에 접수된 연하장을 우체국은 특별히 보관해두었다가 1월1일 소인을 찍고 한꺼번에 배달한다. 그러니 설날 아침 우편함을 가득 채운 연하장을 뒤지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다.

그믐날밤, 가족은 NHK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을 보면서 한해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시간을 함께한다. 자정이 되면 제야의 108번의 종소리가 전국 각지 절과 신사에서 울러 펴진다. 이 시간에 소바(메밀국수)를 먹는 풍습이 있다. 가늘고 긴 국수 가락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고도 하고, 메밀이 잘 끊어진다는 이유로 나쁜 액을 끊는다는 뜻이 있다고도 한다.

잠자리에 들어가면서 밝아올 내일, 새해의 아침은 ‘특별하다’고 마술을 건다. 살짝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이것이 일본에 있었을 당시 새해를 맞이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신정·구정

지금 나에게는 지난해를 정리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세레모니가 없다.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서 눈물도 한두방울 떨어뜨리고 새해 소망을 가슴 저리게 기도하는 그런 시간이 없다. 이건 분명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면서 두 번씩이나 새해를 맞이하니 그 감동이 희석되었기 때문이라고 중얼거린다. 신정은 진짜 설이 아니라 하고, 설은 사실상 2013이 한참 지난 후에야 있으니 어찌 감정을 잡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이건 어쩜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주변에는 해돋이 명소를 찾아 떠나는 친구도 적지 않다. 제야의 종소리 듣겠다고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보신각을 찾는 이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감동도 떨림도 없는 것은 그냥 내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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