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메이지시대 영웅 아버지의 ‘자식 사랑’
월요일 수업을 마치면 오후 7시다. 늦은 귀가길이지만 김 선생이 있어서 항상 즐거웠다. 나이는 나보다 1살 어리지만 박사과정을 먼저 시작한지라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과연 공부를 더 할 수 있을까 이래저래 고민하는 나의 손을 ‘확’ 당겨준 사람이다.
당시 어렵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김 선생과 내가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문학을 그것도 고전문학을 공부한다는 점은 물론이고, 둘 다 비슷한 나이에 결혼해서 가까운 동네에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들이고 김 선생은 딸이지만 같은 나이다.
학회에서 만나도 공부 모임에서 만나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유치원 때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거나, 방학 때는 미술아카데미를 보내자 등등 소소한 이야기들로 서로의 마음을 가깝게 읽어나갔다.
사실 공부하는 동료들 중에는 이 세상 어떤 일보다도 ‘내 공부’가 가장 우선이라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런데 김 선생과 나는 ‘자식이야말로 내가 가장 우선해야 할 대상’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잘못된 생각이라고, 헛다리짚고 있다고…, 뭐라 해도 지금 내 생각을 바꿀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20년 가까이 살아왔다.
이러니 귀가길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이번 주말에는 ‘전설의 고향’이나 갈까?”라면 “그래요. ‘예술의 전당’에서 루브르전 한다지요”라고 대구한다. “오늘 ‘킬링필드’ 볼 것이냐”고 물으면 “이경규가 좋아서 ‘힐링캠프’는 꼭 봅니다”고 답한다. 이러니 통하지 않는 말이 뭐 있겠는가.
수험생 엄마
지난 해 우리는 둘 다 수험생 엄마였다. 매일매일 아이의 안색을 살피면서 하루는 세상을 다 얻은 양 기뻤고, 하루는 지옥 같은 기분에 우울해지는 수험생 엄마의 맘을 누구보다도 잘 나눌 수 있었다. 용한 점집 찾아볼까 하다가도 ‘엄마의 기도’가 더 중요하다면서 서로에게 믿음을 주었고, 수능모의고사 점수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면서 서로의 마음을 위안했다.
그래도 우리는 공부를 하는 사람인지라 논문을 학회에 발표하려고 한다거나, 연구비 신청을 하고 싶다는 등등의 이야기도 했었다. 그런데 김 선생의 답변이 아주 명확했다. “올해는 아무것도 안할 생각이에요. 모든 운이 아이한테 가게. 미신인지는 몰라도 한집에 많은 복을 바라면 안 될 것 같아요.”
경주 최부자집
이 말을 듣자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가 떠올랐다. 1600년대 초반부터 400년간 12대를 내려오면서 만석꾼의 전통을 가졌고, 1950년 마지막으로 전 재산을 대구대학(영남대의 전신)에 기증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바로 그 최부자집이다.
이 집안에 전해오는 전통은 너무나 유명해서 더 이상 설명할 바도 없지만, 그 첫 번째가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했다. 그리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 했고,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 것이며,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했다. 구구절절 훌륭하다. 이러니 <경주 최부자 400년 신화 21세기 시대정신으로 부활하다>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리는 것도 당연지사다.
어디서 들은 바, 전통 중 첫 번째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한 것은, 아비는 자식에게 돌아갈 복을 남겨두어야 하니 너무 많은 복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란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다. 파시조인 최진립이 병자호란 때 억울하게 귀양을 간 적이 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사람이 왕후장상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권세와 부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 권세의 자리에 있음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아 언제 자신의 칼에 베일지 모른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아키야마 히사타카의 두 아들 요시후루와 사네유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메이지 시대 두 영걸의 아버지 아키야마 히사타카(久敬, 1822~1890)가 입버릇처럼 했다는 “아비가 너무 훌륭하면 자식이 훌륭해지지 않는다”는 말도 떠올랐다. 욕심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변명하기 위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 속에 히사타카만의 도회적 교육관이 있는 것 같다.
‘일본 기병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1859~1930)와 러일 전쟁 당시 도고 제독의 일본연합함대의 작전 계획을 수립했던 사네유키(眞之, 1868~1918)의 아버지다. 두 형제는 러일전쟁 발발 시 일본 승리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 후로도 승승장구했다.
자식을 위한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고 나라를 초월한다. 그리고 귀가길 두 여자의 가슴에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