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자연재해

<그림=박은정>

미국의 가뭄

미국 중부 내륙은 지금 극심한 가뭄으로 미시시피 강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미시시피 강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통해서 우리는 마치 이웃 마을의 강인양 기억하고 있다. 직접 가본 적은 없다. 도쿄디즈니랜드에 ‘TOM’S TREE HOUSE’ 옆으로 마크 트웨인 호가 떠다니는 강(?)이 있는데, 미시시피 강은 바로 그런 곳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곳이 말라붙어 선박 운항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곡물과 석탄을 나르는 미국 내륙의 수로이다 보니 선박 중단 시 하루 손실이 3억 달러나 된단다. 보통 일이 아니다.

세계 최대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의 반세기만의 대가뭄은 지구를 반바퀴 돈 우리 밥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전세계의 재앙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이런 가운데 톰 빌색 농무부 장관의 말에 나는 놀랐다. “매일 기도에 추가 기도까지 하고 있습니다. 비만 내릴 수 있다면 기우제든 춤이든 뭐든지 하겠습니다.” 순간 참 무책임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어쩌란 말인가. 하늘이 움직이지 않는데….

올여름 더위

올여름 참 더웠다. 머리털 다 뽑아버리고 싶은 더위였다. 자다가 깨어 찬물에 몸을 식히고 다시 잠을 청하는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 ‘여름용 이불’을 사러 시장에 갔다. 인견이니 삼베니 옛날 어른들이 좋다고 한 그 물건들의 진가를 알았다. 죽부인까지 하나 사서 남편에게 떠안겼다. 나무늘보처럼 축 처져서 한낮의 더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날이 한달은 족히 되는 것 같다.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이제 한풀 꺾였다. 아침저녁 찬바람에 긴팔 가디건을 걸치고, 밤에는 이불을 하나 더 찾아서 덮는다.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에어컨으로 실내온도 1도를 더 내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인간이 제 아무리 똑똑해서 달나라를 가고 별나라를 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30도를 웃도는 날씨 앞에서 나태해졌고, 가뭄 앞에서는 간절히 기도하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자연재해

일본은 자연재해가 참으로 많은 나라다. 지리적 조건에 따른 지진, 화산분화, 태풍, 집중호우, 폭설, 쓰나미 등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일본역사는 예기치 못하는 자연재해 반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들은 오랫동안 쌓아온 것을 잃으면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을 묵묵히 감당했고 이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수준이 최고라고는 하지만, 지들이 아무리 대비를 잘 한다고 한들 재해의 피해를 줄일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일본은 예로부터 자급자족이 어려운 나라였다. 고려말과 조선초 특히 극성을 부린 왜구의 등장 역시 자연재해, 이른바 가뭄과 추위에 따른 식량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은 처참했다. 아직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는데 후지산 화산폭발이니 동경 대지진 도래에 대한 이야기가 흉흉하다. 올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호텔방 TV화면에 비치는 도쿄 사람들은 여태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인과는 달랐다. 도쿄 대지진을 예언하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지진이 발생하면 어차피 다 끝이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뱉으면서 보험조차 들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웠다.

반듯하고 단정하게 내일을 대비하는 일본인이 아니라 ‘자포자기’ 그 자체였다. 그럴 만도 하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그들의 조용하고 침착한 질서의식에 전세계가 놀라지 않았던가. 그런데 원전사고로 이어지면서 날로 확대되는 불안감의 고조, 나라에 대한 불신은 더 이상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위를 넘었다.

지난 7월 16일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사요나라 원전 집회’는 애초 10만 명을 목표했던 모양인데 17만 명이라는 사람이 모여 사상 최대의 원전 반대시위로 진행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수동적이고 윗사람에게 복종하면서 질서를 중요시하는 그들은 지금 바뀌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이들의 분노는 결코 ‘자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연은 위대하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기독교 신자도 불자도 아니지만 기도한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기도한다. “산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자연 앞에서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이지만, 우리의 생명 하나하나는 바로 우주이기 때문이다.

One comment

  1. 교수님 글 매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돌아가셨는데, 통일교와 일본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감상법으로 많은 일본의 신자를 끌어들였다고도 들었고요. 이에 대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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