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넉넉한 마음

먹거리

찬바람이 불고 곰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육소간에서 배운 대로 사골을 커다란 들통에 넣어 밤새 끓였더니 뽀얀 국물이 만들어졌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식탁에 올리니 훌륭하다. 맨날 얻어먹기만 했지 이렇게 직접 만든 건 처음이다.

두 끼를 먹으니 들통 밑이 보이고, 나는 다시 물을 부어 끓였다. 한참 끓이고 뚜껑을 여니 역시 뽀얀 국물이 만들어져 있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이건 원 요술 냄비도 아니고 찬물만 부으면 뽀얀 국물이 만들어진다. 앞집 새댁도 불러 한 그릇 먹이고, 윗집 할머니께도 한 그릇 가져다 드렸다. 황소만한 아들놈 친구 대여섯이 들이닥쳐도 문제없다. 물만 부으면 뽀얀 국물이 다시 만들어지니 말이다. 곰국집 아낙네의 넉넉한 마음은 이래서 생기는 모양이다.

먹거리의 인심은 바로 우리의 인심이고 우리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음식을 마련해서 나누어 먹으니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된다’면서 사람들을 내치지 않는다. 가정집 밥상에서도 각각의 접시를 마련하고 사람 수만큼의 생선토막을 올리는 일본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심이다. 끼니 때 갑자기 들이닥치는 손님이 있으면 누군가는 먹거리를 양보해야 하니 말이다.

잠자리

먹거리만 그런 건 아니다. 잠자리도 그렇다. 방이 모자라면 거실에 요를 깔고 이래저래 누우면 그만이다. 학교 다닐 때 친구집 자취방에 대여섯이 몰려가 맨바닥에 이불 하나 가지고 칼잠을 잤던 기억이 있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이맘 때, 친구 둘이랑 도쿄 서점가 나들이를 했다. 첫날 욕심을 부려 너무 많은 책을 사는 바람에 숙박할 돈을 아껴야할 처지가 되었다. 나는 요코하마에 자택을 가지고 있는 부자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세 사람 재워달라고. 이런 뻔뻔함이 통하는 유일한 일본친구이다.

어릴 적부터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란 그들은 남에게 메이와쿠를 끼치는 일도 메이와쿠를 당하는 일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이 친구는 한국친구를 많이 알고 있으며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집도 지은 부자이니 넉넉한 마음으로 항상 우리를 맞이한다.

그런데 믿었던 그 친구가 “이불이 없어서 세 사람을 재워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사실 일본은 춥다. 기온은 우리보다 높지만 습도가 높아서인지 우리의 추위와는 달리 을씨년스럽다. 온돌이 아니라 집안도 설렁하다. 하기야 전세계에서 우리만큼 난방이 잘 된 나라가 어디 있으랴. 맨바닥에 이불 하나로 밤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럼 그렇지. 일본 인심이 어디 가겠어”라면서 낙담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했던 모양이다. 이불이 넉넉하게 준비된 야마나시(山梨) 별장으로 가자고 했다. 역시 그는 넉넉한 인심을 가진 부자였다. 밤 8시. 어두운 길을 차로 3시간이나 달렸다. 시골길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밤하늘의 별은 우리아들 여드름 같았다. 다음날 후지산을 보면서 온천욕도 할 수 있다는 말에 다들 환호를 한다. 어차피 집을 떠난 여행길 횡재한 것이다.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자리를 준비했다. 이불보다 두꺼운 요를 2장씩 깔고 담요에 이불을 덮었다. 그래도 찬기운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욕탕에서 몸을 데웠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이불로도 모자랄 판국이다. 이제야 우리 친구들 이불이 없어서 재워줄 수 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우리야 온돌방 아궁이에 불만 때우면 맨땅에 이불 하나라도 충분하지만 일본에서는 턱도 없는 이야기다.

일본에는 ‘센베이-부톤’이라는 단어가 있다. 센베이는 밀가루나 쌀가루로 얇게 구운 과자다. 아마도 씹으면 바싹바싹 소리가 나는 짭짤한 간장 맛의 일본 과자를 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센베이-부톤은 센베이처럼 얇은 이불을 말한다. 아마도 온돌방에서 사용하는 우리네 요 정도의 두께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에게 센베이-부톤은 얇은 요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요를 깔고 자야하는 처량한 내 신세’ 같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이불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감지할 수 있다.

우리의 넉넉한 문화는 곰국을 끓이는 아낙네의 마음에서 그리고 후끈한 온돌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찬바람 부는 오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