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목욕탕 개방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연기화권(大佛緣起畵卷)’에 그려진 고묘황후의 시욕(施浴)장면

우리나라 목욕의 역사는 신라시대 때부터 시작되는데, 절에 대형 목욕탕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아 청결의 수단만이 아니라 종교의식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일본의 목욕역사 역시 불교와 관련이 있다. 원래 불상을 씻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승려들의 심신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욕당(浴堂)을 마련하고 승려들이 입욕한 후에는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환자, 죄수들에게 개방했다. 이것을 시욕(施浴)이라고 한다. 분명 포교를 위한 것인데, 서민의 병을 예방하고 복을 부른다는 것으로 하나의 풍속이 되었다. 8세기 중엽, 성덕태자 때 대륙으로부터 들어온 불교경전 『불설온실세욕중승경(佛說溫室洗浴衆僧經)』은 입욕문화 보급을 장려했는데, ‘7가지 도구를 가지고 목욕을 하면, 7가지의 병을 없애고, 7가지의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복 중에는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 향기로움이 포함되어 있으니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은 동서고금 남녀노소 다를 바가 없다.

고묘황후의 시욕설화(施浴說話)

나라시대의 고묘황후(光明皇后, 701~760)의 시욕설화가 일본 최초의 불교통사(『元亨釋書』)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천연두로 많은 사람이 죽자, 고묘황후는 부처님의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나라의 홋케지(法華寺)에 욕탕을 설치해서 귀천을 불문하고 1000명의 더러움을 씻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사람은 피부병이라 악취가 심했다. 그래도 황후는 주저하지 않고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서 뱉어 없애고 몸을 씻어주고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했다. 그러자 병자는 빛을 발하면서 ‘나는 아촉불이다. 여기서 목욕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황후는 놀라서 바라보는데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홋케지의 욕당은 탕에 몸을 담그는 입욕법이 아니라 가마솥에 물을 끊이고 그 증기를 이용하는 증기욕이다. 이후 메이지 시대까지 정월과 고묘황후의 명일에 시욕을 위해서 불을 지폈고, 이후에도 간간히 행사는 지속되었다.

헤이세이 시욕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자, 황실은 도치기겐(?木?) 소재의 나스 별장(那須御用邸)의 직원용 목욕탕을 인근 피해지의 사람들에게 개방했다. 황실의 나스 별장은 황족의 요양을 위한 곳으로 통상 절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헤이세이 시욕’이라면서 크게 반겼다. 고묘황후의 시욕설화를 알고 계셨는지…….

일본에서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아빠가 퇴근하면 ‘다녀오셨습니까’라는 인사말 다음 ‘밥 or 목욕’이라는 대화가 이어진다. 습지고 끈적끈적한 날씨, 달리 몸을 데울 곳이 없는 일본에서 목욕은 먹을거리 버금가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이다. 그러니 ‘헤이세이 시욕’은 그 어떤 ‘베품’보다도 큰 의미를 가진다.

센토

13세기 이후 니치렌(日蓮)의 글(日連御書錄)에 ‘탕전(湯錢)’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 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이 생긴 것 같다. 에도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지금의 ‘센토(?湯, 일본의 대중목욕탕)’와 같은 존재가 등장했고, 전쟁 후 도시인구가 증가하면서 센토는 여기저기에 생겨났다.

간토지방에서는, 궁이나 신사와 같은 외관을 갖춘 센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웅장한 합각머리는 종교적 냄새를 물신 풍긴다. 당시 사원이나 신사를 참배한다는 것은 ‘참배한다’는 목적 외에 여러 사람과의 만남, 일상에서의 탈출 등의 재미를 더한다. 센토 역시 지역사람들에게 이에 버금가는 재미를 주고자 한 것일까.

원래 일본의 목욕의 시작이 불교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런 외관의 센토가 있다는 것은 전혀 당치않은 일만은 아니다. 고묘황후의 설화에서처럼 부처가 올 수도 있는 곳이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인 웅장한 외관의 목욕탕이나 ‘강의 신’의 등장 역시 한 개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황당한 설정만은 아니다.

서울에 공중목욕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동방예의지국으로 여럿이 옷을 벗고 목욕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보다도 목욕탕 문화를 즐기는 민족이 되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스파나 찜질방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헌데, 얼마 전 한국국적을 가진 우즈베키스탄 여인이 대중목욕탕 출입을 저지당하는 일이 있었고, 이에 인종차별 운운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본에서도 발생했었다. 1999년, 귀화한 미국인을 비롯한 3명의 외국인이 홋카이도 오타루시에 소재한 센토로부터 입욕을 금지 당하자 재판으로 이어졌고, 인종차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자는 불씨가 일본전국에 퍼졌다. 2005년 최종판결에서 해당 대중탕은 배상하게 되었지만, 오타루시에 대해서는 문책하지 않았다. 이 결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21세기 세계는 하나’ 이런 말을 하기 전에, 고묘황후의 시욕설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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