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우리 동네 애완견

애완견

나는 3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건물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오래되었다. 근방에 ‘팰리스’라는 이름도 웅장한 주상복합 고층건물이 들어서자 새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옮겨갔고, 이곳 사람들은 옛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 그러니 숟가락 수까지 아는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이웃들이다.

아랫집 따님 시집보낸다고 함이 들어오는 날에는 아파트 단지 전체가 떠들썩했다. 무뚝뚝한 우리 신랑도 나가서 밀고 당겼을 뿐 아니라, 온동네 강아지까지 나와서 짖어댔으니 신랑감 친구들 두손 두발 들고 그냥 걸어 들어와 박을 깼다. ‘얻을 먹을 수 있는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는 고귀한 문구를 이렇게 쓰면 안 되겠지만, 나는 이집 김치 저집 된장을 얻어먹고 행복해 한다. 참 좋은 집에 살고 있다.

우리 동네 애완견

<그림=박은정>

“대박이야! 아침에 주차장에서 루루네 아저씨 만났는데, 학원까지 태워다주셨어. 루루네 차 짱 좋아.”

루루네는 우리 아파트 802호다. 언제부터인가 102호는 퐁키네, 202호는 초코네라 한다. 우리집은 ‘용정이네’라고 불리는데, 듣는 용정이는 강아지가 아닌 고로 심히 불쾌하니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키우자고 떼를 쓴다. 그 동생 은정이는 ‘나는 강아지 대열에도 끼지 못한다’면서 볼멘소리를 한다. 반려동물 천만세대란다. 이집저집 작고 예쁜 강아지들이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간혹 퐁키네 가족이 여행을 갈 때는?퐁키를?우리집에 데려다 놓는다. 퐁키는 15살이나 되는 아주 영리한 개인지라 그 행동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집에 오면 아빠만 따라다닌다. 이집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한 것이다. 주인 옆에 꼼짝없이 있다가 그가 일어서면 그 자리에 냉큼 앉는다. 그리고 누가 비키라면 앙칼지게 짖는다. 즉 본인이 ‘넘버 투’라는 게다. 물론 주인이 돌아오면 잽싸게 그 자리를 내준다. 웃기는 놈이다. 재미 없는 이 사람도 그런 퐁키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저 정도만 했다면 출세했을 텐데…”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웃는다.

“아빠, 나를 볼 때도 퐁키 볼 때처럼 애정 깊은 눈으로 봐봐”라면서 아빠의 얼굴에다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면서 딸아이가 질투를 하고, “한 그릇도 안 되는 놈이 까불어”라면서 아들 역시 질투를 한다. 이렇게 며칠 지내다 보면 정이 들어 “퐁키야 엄마 왔다”면서 주인이 오면 꼬리치면서 달려 나가는 모습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노총각과 빅토

일본은 대개 5가구에 1마리 꼴로 애완견을 키운다고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사료가 보편화되면서 시작된 현상이다. 도쿄의 노총각 내 동생도 키웠을 정도이니. 건축사가 되기 위한 수련 기간 외롭기는 외로웠던 모양이다. ‘빅토’라는 달마시안을 한 마리 구해서 키웠다. 새끼를 분양받기 위해서 그 비싼 신칸센(고속열차)을 타고 교토까지 갔었다. 문제는 엄마였다.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귀가하는 아들 도시락 싸고 밥 챙기기도 버거운데 혈통 있는 개까지 떠안게 되었으니. 처음에는 ‘지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개까지 데리고 와서 나를 귀찮게 한다’면서 투덜댄 모양인데, 언제부터인가 정이 들어 빅토와 단짝이 되었다.

하루는 애들 쓰던 포대기를 보내라고 해서 뭔 일인가 했더니, 빅토가 아픈 것 같아서 덮어준다는 것이다. 곰탕을 끊여서 당신은 아까워서 드시지도 않고 아들과 빅토만 먹였다고 한다. 논문 때문에 정신없으니 우리집 살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도 ‘빅토를 누가 보냐’면서 단칼에 거절하니 서운하기가 말할 길이 없었다.

빅토는 일본에서 생활하는 노총각의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노총각은 빅토를 내세워 ‘잘 생긴 강아지를 기르는 동호회’ 같은 곳에서 활동하면서 나름 사회적 지위와 지성을 갖춘 동물애호가들과의 만남을 즐겼고, 일본사회의 또 하나의 측면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애완견 빅토는 마음의 친구, 삶의 동반자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다. 일본사람들은 작은 만남도 조직적으로 운영하기를 좋아하다보니, 비상연락망 같은 것까지 만들어 정보를 주거니 받거니 한 모양이다.

곰탕을 먹고 자란 빅토는 잡지 모델이 되기도 했고, 그 덕에 노총각은 팔등신 시세이도(資生堂) 화장품 모델과 작은 썸씽(?)도 만들었다. 얼굴, 몸매, 매너 모든 것이 완벽하데 키가 작아서 한이 많았던 노총각은 빅토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했다. 빅토를 훈련견 학교에 보내서, 다마카와(玉川) 강변을 산보할 때 어떤 개를 만나도 먼저 짖지 않는 신사로 교육시켰다. 없는 집에서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아들 하나 대학 보내는 그런 느낌이었다. 건축사 지망생의 주머니 사정 뻔~하니 말이다. 우리엄마 왈 “빅토가 우리집에서 가방끈이 가장 긴 놈”이란다.

여름에 친정이라고 갔더니, 마침 교토에서 빅토를 분양한 집 딸이 도쿄나들이를 해서 그녀를 맞이한다고 나는 찬밥이었다. 빅토로 인해 맺어진 인연은 혈연만큼이나 끈끈한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동생이 일본에서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면서, 빅토는 도쿄의 부촌인 데이엔쵸후(庭園調布)에 커다란 저택을 소유한 은행지점장 집으로 보내졌다. 노총각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나는 생전 처음 보았다. 얼마 후 화과자를 사들고 빅토를 만나러 간다고 하길래 따라나섰다. 개인적으로 담너머 훔쳐보았던 부잣집 마당을 구경하고 싶었다. 파란 잔디의 커다란 마당에서 빅토는 어설펐던 주인 노총각을 알아보고 짖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노총각은 일본에서 건축사로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할아버지가 된 빅토를 만나러 데이엔쵸후의 집을 찾는 모양이다. 노총각은 아직도 노총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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