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골든위크’ 뒤 ‘오월병’ 앓는 일본
5월병
일본은 지금 ‘골든위크’가 끝나고 후유증을 앓고 있다. ‘5월병’이란다. 올해는 4월28일부터 5월6일까지였다고 하니 길기도 길었다. 4월29일은 쇼와의 날, 5월1일은 메이데이, 5월3일은 헌법기념일, 5월4일은 초록의 날, 5월5일은 어린이날이다. 분명 징검다리 연휴인데, 일본에는 ‘대체휴일’이라는 게 있어서 5월2일 하루만 어떻게 한다면 완벽한 연휴였다.
일본은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칠 경우 이월해서 쉬는 ‘대체휴일’을, 2005년 법으로 정하고 2007년부터 시행했다. 이후 골든위크는 보다 완벽해졌다. 연휴에 들어가기 전, 주간지는 ‘연휴 합병호’를 발행할 정도다. 출판사도 인쇄소도 휴식시간을 가지기 때문이란다. 태국처럼 공휴일과 토요일이 겹칠 경우까지 이월해서 쉰다면 5월7일까지 연휴가 이어졌을 터인데 안타깝다고 한다. 배부른 소리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스웨덴, 우즈베키스탄 등은 시행하고 있지 않는 제도다.
쇼와의 날
골든위크 시작인 4월29일은 쇼와의 날이다. 1948년 일본국민의 경축일에 관한 법률(祝日法)이 시행된 이래, 쇼와천황(昭和天皇, 1901~1989)의 탄생일은 ‘천황탄생일’이라는 이름으로 골든위크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1989년 쇼와천황이 죽자 더 이상 4월29일을 천황탄생일로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당초 이날을 쇼와를 기리는 새로운 기념일로 만들고자 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초록의 날’이라는 이름의 날이 만들어졌다. 그 후 쇼와의 날을 되살리자는 운동이 확산되었고 이에 호응하는 사람들에 의해 4월29일을 ‘쇼와의 날’로 제정한다는 법 개정이 있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시행되었다. ‘극동의 세월을 보내고 부흥을 이룬 쇼와 시대를 되돌아보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이 이날의 취지다.
초록의 날은 5월4일로 이동되었다. 사실 초록의 날이 만들어진 것은, 오랫동안 골든위크의 시작이었던 4월29일을 평일로 되돌린다면 국민생활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4월29일을 그대로 공휴일로 두기 위해서 만든 날이다. 쇼와천황이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자연을 각별히 사랑했기 때문에 ‘초록’과 관련된 이름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초록의 날은 어찌되었든 쇼와천황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쇼와의 날이 만들어지면서 5월4일로 밀리게 되었다. ‘자연을 즐기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이 이 날의 취지다. 어쨌든 좋은 일이다. 휴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골든위크
이렇게 보니 기념일 때문에 만들어진 골든위크인지, 골든위크를 위해서 만들어진 기념일인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사실 ‘골든위크’라는 단어는 원래 존재했던 단어가 아니라 일본에서 만든 ‘영어’다. 우리나라에서 휴대폰을 ‘핸드폰’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1951년 ‘다이에이(大映)’가 이 시기에 상연한 <자유학교>가 창사 이래 최고의 매상을 기록하자, 영화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한 선전용어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골든위크란 영화계의 상술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상당히 오래전부터 쓰인 용어이다. 그래서 NHK를 비롯한 일부 매스컴에서는 이 단어를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대형연휴’라는 말을 대신해서 쓰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영어방송에서는 ‘Golden week holidays’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음력’에 대해서 지식으로만 이해할 뿐, 현실 속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아해한다. 그러니 구정이나 추석처럼 음력인 날을 공휴일로 한다는 것은 없다. 석가탄신일과 성탄절도 공휴일이 아니다. 이런 날을 챙기면 알라신의 기념일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기념일 때문에 생긴 휴일이라기보다 휴일을 위한 기념일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니 국경일 내지 기념일이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돌이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골든위크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간 사람들 중에는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일본은 다들 ‘5월병’을 앓고 있다. 그것도 나는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