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한국과 일본의 ‘글쓰기’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는 입학 전 숙제를 산더미처럼 내주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큰애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는 나도 스트레스였다. 전투장에 내보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챙기고 거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도 고등학생 엄마로서 고수가 된 셈이다. 아이는 엄마가 간여하면 간여한 정도의 크기, 혹은 더 작은 크기로밖에 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아이들이 잘 하는 것들은 다 내가 간여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큰 아이는 피아노를 잘 치는데 이건 엄마가 음치라 가능했던 일이다. 내 귀에는 우리 아이의 피아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에 무조건 감동했다. 두통도 치유되는 것 같고, 변비도 해결되는 것 같다고 칭찬하면서 아이의 피아노 소리를 즐겼다.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다. 소리에 대한 감각이 무딘 나는 우리 아이의 피아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지금도 모른다. 단지 유치원 때 시작한 배움을 본인이 아직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막내는 그림을 잘 그린다. 이것 역시 엄마가 간여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사자를 파랗게 칠하고 코끼리 머리에 뿔을 달아도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예술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옆에 끼고 쥐어박으면서 가르친 수학은 도통 아니다. 친구 따라 간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지 못한 단 하나의 이유가, 계산이 되지 않아서라는 말에 경악을 했다.

개학하면 바로 시험을 치르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2권의 책을 읽고 A4용지 10장의 독후감을 제출해야 한다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입학식날 다 썼냐고 물었더니 3장 썼다고 했다. 주말에 다시 물었더니 7장 남았다고 했다. 드디어 내일 제출해야 한단다. 만약 나한테 도움을 청했다면 어쩌겠는가. 같이 밤을 새면서 작업을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막내는 역시 독립적이다. 스탠드에 불을 켜고 전투 자세로 책상에 앉는다.

새벽 4시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책상에서 꾸물대고 있다. “우리 딸 몇 장이나 했어”라면서 봤더니 8장이란다. 촘촘한 글씨에 행간도 좁다. 중간에 제목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종이를 까맣게 메우고 있었다. 손이 아프단다. 보다 못한 내가 “표지를 만들어 제목 쓰면 1장 해결되고, 마지막 페이지는 2~3줄만 쓰면 되겠다”라고 했더니 그래도 되냐면서 활짝 웃는다. 더 일찍 내가 간여했다면 용지의 여백, 글자 크기, 행간을 최대한 크게 잡아서 10장을 쉽게 채울 수 있는 요령을 전수했을 것이다. 중간 중간 소제목 같은 것으로 공간을 채운다면 더 쉬운 일이고….

어쨌든 아이는 10장을 채우고 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기특한 우리 새끼”라면서 잠결에 한마디 하고 꼭 껴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책상을 보니 깨알만한 글씨로 채워진 10장의 독후감이 있었다. 제목만 적은 표지 아랫부분에 ‘1p’라고 적혀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한장 한장 복사를 했다. 힘들었던 시간의 기억을 남겨두고 싶었다. 10장을 채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룻밤에 작성했으니 내용은 뻔하다. 그래도 10장을 채운다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작업임에 분명하다고 믿었다. 어젯밤의 노력은 이 아이가 살아가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글쓰기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역시 독후감 숙제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학교를 졸업한 나는, 집 앞의 일본공립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니 이것이 일본학교에서 처음 맞이하는 방학이었고, 첫 숙제였다. 소리에 대한 감각이 무딘 나는 음악적 소질만 없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소질도 떨어져 당시 상당히 고심했다.

일본도 지금이야 컴퓨터로 글을 작성하지만 당시는 대개 원고지에 글을 썼다. 원고지는 보통 400자인데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세로쓰기를 하고, 특별히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단어의 대부분이 한자인지라 명사와 조사가 자연스럽게 구분되고, 쉼표와 마침표를 적절히 이용하니 ‘아버지/가방에/들어갔습니다’와 같은 오류는 잘 생기지 않는다. 흔히 일본어는 우리말과 문형이 같아서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일본어는 일본어만의 맛이 있어서 우리말을 그대로 옮긴다고 그것이 바로 일본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우리말로도 글쓰기를 잘 하지 못했는데, 어눌한 일본어로 작성해야 하는 나의 첫 숙제는 고역이었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우리집에서는 그나마 내가 일본어를 제일 잘 했으니 말이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지 않은 양이었던 것 같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다다미방에 엎드려 원고지와 씨름하는 나의 모습과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만 기억된다.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필요한 양을 채웠다. 어떤 글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빨간 머리 앤을 읽고’였던 것 같은데. 단 선생님께서 “글씨가 참 예쁘구나”라고 칭찬해주신 게 기억난다. 문형이 맞지 않고 문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글이라 도무지 손을 댈 수 없어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차마 예쁘다고 칭찬할 수 없는 여자아이에게 “맏며느리감이네”라고 덕담을 던지는 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그 말은 나에게는 용기가 되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스스로 해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겨울방학 숙제 독후감은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맏며느리감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나는 막내며느리가 되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칭찬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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