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하시모토 도루’
“위안부가 일본군의 폭행 협박을 받고 강제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 있다면 한국이 내놔야 한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의 말이다. 순간 나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시모토가 ‘오사카 유신회’의 당 대표이며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주목을 받는 큰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시모토는 1969년 생으로 나와 같은 또래의 사람이다. 나는 초?중?고를 일본에서 보냈다. 그러니 하시모토가 ‘청춘’이었을 그 시간 나도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같은 땅에서.
일본의 희망 아이콘 하시모토 도루?
편모슬하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하시모토는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함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 오사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NHK 토론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TV 법률상담 등 방송인으로 지명도를 쌓았다. 그의 프로필에 전 탤런트라는 기록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방송의 힘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는 2008년 최연소(당시 38세) 오사카부 부지사(府知事)로 당선되었다.
취임사에서 “오사카는 파산상태다. 나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어 달라”는 열의에 찬 발언은 그를 ‘강한 남자’로 부각시켰다. 당시 오사카부는 5조 엔에 이르는 부채로 파산상태였다. 하시모토는 재정재건을 위해서 각종 단체보조금과 공무원 임금을 삭감했다. 물론 부지사(하시모토 자신)의 봉급도 삭감했다. 그리고 공공시설의 민영화, 불필요한 청사 매각을 과감하게 추진하면서 취임 2년 만에 오사카부를 흑자로 만들었다. 2010년에는 지역정당 ‘오사카 유신회’를 만들어 자민당과 결별하고, 이듬해 오사카시(市) 시장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70~80년대 학창시절
1964년 동경올림픽을 치르고 세상은 평화롭고 날로 풍요로워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시대에 태어나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핑크레이디’ ‘캔디즈’ 등 아이돌 걸그룹에 환호했고, ‘도라에몽’ ‘캔디캔디’ ‘기동전사 건담(機動戰士ガンダム)’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ヤマト)’를 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서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사진집 ‘산타페’를 소장하는 그런 시대를 산 사람들이다.
쇼와천황의 죽음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한시대의 종언을 같이 맞이했다. 내가 좋다고 네가 좋다고 사랑을 고백하고,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워크맨에 담아서 들었던 그 친구들. 함께 웃고 울었던 히로시, 도미오, 요코, 노리코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고 “증거가 있다면 내놔봐”라고 한다고 생각하니 ‘절망’이 아닐 수 없다.
하시모토는 다르다
하시모토는 역시 ‘난사람’이다. 중?고등학교 그 많은 나의 동창들 중 지금 그만큼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성장한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내 일본 친구들과는 다르다. 이 사실 하나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시모토 선조는 피차별 부락의 갖바치였고, 그의 아버지는 야쿠자였으며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스자살을 했다는 범상치 않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대학 때 고등학교 동창과 동거를 하면서 옷장사를 했으며 결혼 후 7명의 자식을 두고 있다는 것 역시 평범하지 않다.
2010년 월드컵에서 활약한 엔도 야스히토(遠藤保仁) 선수에게 ‘감동 오사카 대상’을 수여할 시 자신의 아이 3명을 청사로 데리고 와서 만나게 한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평을 듣자 “우리 아이들은 일반가정과는 달리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니 이 정도의 혜택은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반론하는 뻔뻔한 ‘자식바보’ 모습을 보였다.
얼마 전에는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에 6년 전 술집 여성과의 불륜사실이 실렸다. 코스프레를 좋아했다는 등 민망한 이야기들이 소상히 밝혀졌다. 이 사실 앞에서도 하시모토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에서 미소를 띤 온화한 모습으로 “부지사가 되기 전 성인군자처럼 살지 않았다”고 불륜을 인정했으며 부인의 엄청난 페널티가 기다린다는 유머러스한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서 일본은 과거의 일인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그렇다, 그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성인군자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일본도 그 자신도 성인군자 따위 바라지 않는다. 오랜 재정난과 불투명한 미래에 무기력해진 일본사회는 그에게서 탈출구(희망)를 찾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