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부탄국왕 내외는 행복바이러스 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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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생들에게 “만일 세상에 네 명의 왕만 존재한다면 어느 나라 왕이 남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다들 손가락을 꼽으면서 이 나라 저 나라 이름을 올린다. “일본, 영국, 부탄…, 응…, 그리고 북한”이라고 한 학생이 답한다.?교실은 금세?웃음바다가 되었다. 정답은 카드의 네 왕이란다. 이건 어디까지나 수수께끼다.

재미난 사실은 학생들의 입에서 부탄이라는,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위치한 인구 70만 명의 작은 불교왕국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 인도의 보호아래 있었으며, 해발 2000미터 이상의 험한 산악지대로 아직까지 해외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곳이라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열차도 고속도로도 없을 뿐 아니라 개별 여행을 허락하지 않는 나라라 이곳을 다년간 여행자도 많지 않다. 그런데 지난 10월 젊은 국왕이 평범한 여대생과 결혼을 하면서 ‘아시아판 세기의 결혼’ 운운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8년 28살의 나이로 부탄의 5대 왕위에 올라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왕으로 주목 받고 있는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31)는 제선 페마(21)를 신부로 맞이하고 지난 11월16일 6일간의 일정으로 신혼여행 겸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역시 국왕(천황)이 존재하는 나라인지라 나루히토 왕세자가 이들을 맞이했고 황궁에서 만찬회가 열렸다. 일본 매스컴은 아름다운 신데렐라에 열광했고, 부탄 국왕부부의 방문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50km 떨어진 소마시를 방문하자, 대지진 후 외국 국가원수가 원전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일본국민들은 감동했다. “모두를 안아드리고 싶지만 불가능하네요. 그 대신에 제 아내를 안아주겠습니다”라면서 왕비를 와락 포옹하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퍼포먼스는 일본인들을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부탄 국왕부부가 일본을 방문한 6일간 일본은 온통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잘 생긴 젊은 국왕과 아름다운 왕비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일본을 뜨겁게 달구었고, 그 여운은 아직도 훈훈하다. 그리고 지금 왕과 왕비만이 아니라 ‘국민의 대다수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라’ 부탄에 대한 관심이 일본에 큰 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지난 11월17일 신혼여행차 일본을 방문한 부탄 국왕이 일본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동영상

부탄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 남짓한 가난한 나라이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나라이다. 1972년 4대 국왕 지그메 싱계 왕추크는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철학을 국정운영목표로 설정했다. 그는 이것을 이른바?‘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고 명명하고, 국민총생산(GNP)을 대신하는 새로운 후생지표로 삼았다. 세계 모든 나라가 국부(國富)의 원천을 ‘생산’에서 찾을 때 부탄은 ‘행복’에서 찾고자 했다. 부탄은 경제성장보다 국민의 행복에 우선권을 두고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다.

지난 11월 5일 일본은 국내총생산 등의 경제지표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국민의 마음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행복도 지표’의 시안을 공표했다. 시안은 경제규모만이 아니라 마음의 행복감을 기본으로 3개의 지표를 설정했다. ‘경제사회 상황’ ‘심신의 건강’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성’이 그것인데, 3개의 지표를 11개 분야로 나누고 132개의 개별 데이터를 가지고 행복을 수치화하는 것이 목표다.

‘경제사회 상황’의 판단자료에는 ‘어린이의 빈곤율’과 ‘육아휴직 취득률’ 외에도 ‘방사선에 대한 불안’ 등 주관적 항목이 들어있다. ‘관계성’에서는 가족이나 친구와의 접촉밀도만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등도 활용한다. 내년부터 시험적으로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행복도 지표의 유효성이나 개별 데이터 검증을 진행하지만 단일지표는 만들지 않을 방침이다.

이건 분명 부탄의 행복 바람이 남긴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도에 대한 지표를 가지고 있는 곳은 부탄만이 아니다. 영국 신경제학재단은 2009년 143개국을 대상으로 기대 수명, 삶의 만족도, 환경오염 정도 등을 평가해서 국가별 행복지수(HP)를 산출하고 순위를 매겼다.(부탄 17위, 한국 68위, 일본 75위)

또한 영국 레스터대학에서는 2006년 178개국을 대상으로 건강, 경제, 교육 3가지 요소를 가지고 세계행복지수를 발표했다.(부탄 8위, 한국 102위, 일본 90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07년 평균행복, 행복수명, 행복불평등, 불평등조정행복을 기준으로 각 국가의 GNH 정도를 측정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순위를 산정한 국가별 한국순위가 있다. 북한 조선중앙TV에서도 2011년 상반기에 ‘세계 각국 국민들의 행복지수’라는 것을 발표했다.(중국 1위, 북한 2위, 남조선 152위, 미국 203위로 꼴찌) 캐나다에는 웰빙지수가 있고, 프랑스는 지표개발 중이라고 한다.

이런 지수들은 각기 다른 기준과 요소를 가지고 산출된다. ‘행복’이라는 정성적(定性的)인 요소를 정량적(定量的)으로 평가한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단 경제성장만을 위해서 달려온 국가가 국민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일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부탄왕국의 한 관료가 한 말을 소개하겠다. “행복은 가진 것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하는가가 행복의 열쇠이다.”

2011년도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내게 묻는다. 지금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