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일본고전독회편 세 권의 책

출간된 세권의 책

일본고전독회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학부 김종덕 교수의 제자들은 매달 한번 씩 일본고전독회 모임을 가진다. 2001년부터 시작된 모임이니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동교 연구산학협력단 콜로키움 지원으로 개최된 것이긴 하나, ‘만남’에 목말라하던 연구자들의 열정으로 이어졌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바가 없다.

김종덕 교수의 30여 명 제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의 논문을 발표하고 교수님을 비롯한 선후배로부터 조언을 듣는 자리다. 학회 발표 전의 논문을 가지고 와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준비된 논문을 가지고 와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물론 30여 명 제자들이 다 모이지는 못하지만 매번 열댓 명이 자리를 같이 한다.

일본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겐지 이야기』를 전공한 이를 비롯해서 에도시대의 장편소설 『호색일대남』을 전공하는 이까지 그 전공도 다양하다. 멤버 중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이도 있고, 현재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도 있다. 그러니 20대에서 40대의 제자들은 일본문학을 공부한다는 하나의 이유로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학문세계를 나누고 더 나아가 ‘삶’까지도 나누는 그런 모임이다. 간혹 외국에 유학을 나가있는 동료도 잠시 귀국해서 참가한다. 일본의 고전문학 연구자들도 찾아와서 발표를 하고 서로의 연구 동향을 교류한다. 1년에 한번 정도는 산행을 하고 외지로 떠나기도 하는데 그 자리에서도 연구 발표는 이루어진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연구실에 갇혀서 외골수가 되기 십상인 연구자들에게 이 모임은 단비와 같다. 물론 준비하는 이는 힘들다. 그래도 이런 작업을 통해서 동료로부터 자극을 받으며 연구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있다. 발표 후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바로 누군가의 논문이 되기도 하고 책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 바로 삶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종덕 교수와 제자들

세권의 책 출간

이들이 큰일을 벌였다.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 일본고전문학의 세계를 알리고자 세 권을 책을 발간했다. 사실 일본문학 전공자들이 일반 독자들을 위한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용만이 아니라 단어 선택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공간으로 읽는 일본고전문학』은 일본고전문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중심으로 상대에서 중고,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25개의 작품을 소개한다. 신화와 전설의 공간, 괴담의 공간, 요괴가 출몰하는 공간, 참배의 길, 애욕의 궁정 생활과 수행을 떠나는 길, 유곽을 따라 떠나는 호색남의 길, 하이카이의 기행, 관음성지의 순례 등을 테마로 『고사기』, 『야마토 이야기』, 『에도 명소기』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겐지 이야기』는 국내에 이미 3종의 번역과 초역이 나와 있고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는 작품이지만 국내 독자들을 위한 입문서나 연구서가 없다. 그래서 준비한 책이 바로 『키워드로 읽는 겐지 이야기』다. 이 책은 독자들이 『겐지 이야기』의 세계와 문학성을 이해할 수 있는 시대 배경과 기초 지식을 제공한다.

『에로티시즘으로 읽는 일본문화』는 근대 이전의 문학작품을 통해 일본 문화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의 특징 및 현상을 통시적으로 조망한다. 일본인들은 어떤 성적 행동에 가치를 부여했고, 무엇이 정념의 희열과 실연의 고통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에로티시즘의 전통이 오늘날에는 어떠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지와 일본인의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함께 살펴본다. ‘금단의 에로스, 근친상간’ ‘그 남자의 사랑, 남색의 역사’ ‘에도의 홍등가, 요시하라’ 등 글 제목부터 흥미롭다.

3월 중순,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쌀쌀한 날이었지만 김종덕 교수의 제자들은 세권을 책을 출간한 기념으로 자축파티를 가졌다. 자주 만난 얼굴도 있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글로만 알고지낸 선생님들도 참석했다. 다들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의 책들을 받아들고 기쁨을 나누었다.

김종덕 교수는 아가의 웃음에 산고를 잊은 산모처럼, 책이 나오기까지의 그 힘든 시간을 잊고 다음에는 어떤 책을 기획할까 궁리를 한다. 일본을 우리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뭔들 다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아는 게 별로 없는 상대다. 일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은 그 거리를 더 크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그들만의 ‘이해’를 하고 논문을 발표했었다. 이제 그들이 일반 독자를 향해서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모든 작업은 긴 시간 변함없는 사랑으로 제자들과 함께 한 김종덕 교수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더 크게 손을 뻗치고 일반 독자들이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이 나오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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