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각자내기’

<그림=박은정>

더치페이…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오늘 점심은 각자 돈을 낼까요, 아니면 더치페이를 할까요?”라는 당돌한 후배의 말에 차마 “내가 살게”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선배의 주머니 사정을 배려해준 것인지 선배와 동등함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여하튼 각자내기를 하잔다. 하기야 언제부터인가 우리도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각자 먹은 건 각자 계산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어울려 같이 밥을 먹고 누군가가 계산하면 다른 누군가가 찻값을 낸다. 이것을 기억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다음 날에는 내 차례라는 생각을 하고 밥값을 낸다. 그러면 또 누군가가 센스 있게 나타나서 찻값을 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이렇다. 무언의 약속이 만들어지고 무언의 규칙 속에서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런 관계가 피곤하다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구시대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밥을 살 때는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얻어먹을 때는 빚을 지는 것 같단다. 선배가 베푸는 것은 그들이 ‘권위’를 가지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아마도 교통카드를 사용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할 때 동행하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카드로 자신의 몫만 지불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면서 각자내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각자내기를 철저하게 하는 나라다. 때에 따라서는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고 이것으로 오해를 사는 일도 있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생각이 다를 뿐이다. 내가 경험한 일본의 각자내기 몇가지 사례다.

이야기1

가수 김완선이 인기가 많을 때의 일이니 한참 오래 전 일이다. 일본친구 A로부터 김완선의 노래 테이프를 구한다는 친구 B를 소개받았다. 나는 B에게 김완선 테이프를 한 박스 소포로 보냈다. 그리고 일본을 방문했을 때, B는 고맙다며 나에게 밥을 산다고 했다. B는 나와 친구 A를 도쿄 시부야의 고급스러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생전 처음 꿀에 찍어먹는 고르곤졸라피자라는 맛도 이름도 요상한 것을 먹었다. 그리고 나오는데 친구 B는 3분의 2의 돈을 계산하고, 친구 A는 자신이 먹은 밥값을 냈다. 카운터의 사람도 친구 A도 B도 모두 자연스러웠다. 나만 그 자리가 참 불편했다. 내가 왜 그리도 친구 A한테 미안한 것인지.

이야기2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의 일이다. 일본 친구 C는 결혼 전이라 아이가 없었지만 우리 아이를 위해서 실내놀이터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만나서 같이 움직이는데 지하철 표를 살 때 친구 C의 것도 같이 사려고 했더니 “우린 오래오래 친구이고 싶으니 각자 지불하자”는 말을 했다. 나는 오래오래 친구이고 싶어서 각자내기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야기3

대학 후배 D와 한국에 유학 온 일본친구 E의 미팅을 주선했다. 대학로에서 만나 소개하고 나는 먼저 자리를 떴는데, 훗날 후배 D도 일본친구 E도 나한테 불만을 터뜨렸다. D왈 “무슨 남자가 지가 마신 커피 값만 내고 나가냐.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정말 정나미가 떨어지더구먼” E왈 “당신은 당신이 마신 커피 값을 내지 않고 가서 D양이 난처해했습니다.” 사실 후배 D가 난처해 한 것은 미팅을 주선하고 커피 값을 내지 않고 나간 나 때문이 아니라 남자인 E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각자내기가 생활화되었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 한껏 멋을 부리고 미팅을 나가는 아들 녀석 뒤통수에다 “밥값은 꼭 네가 내는 거다”라고 소리 지르고 내보냈건만…, 어찌했는지 알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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