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스마트폰과 일본어사전
스마트폰이 밉다
수업을 하기 위해서 강의실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시작합시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뭐가 그리 중요한 게 있는지 살짝 훔쳐보면 카카오톡이니 페이스북이니 뭐 그리 중요한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딸아이랑 ‘터키문명전’을 보러 가기 위해서 이촌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지하철노선도를 보면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오면 되겠다. 약속시간 1시간 전에는 학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더니, 우리 딸 왈 “왕십리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타라는데, 25분밖에 안 걸리는데” “누가?” “똑똑이폰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엄마의 말보다 똑똑이폰, 일명 스마트폰의 정보가 훨씬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 아이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그런데 당일 약속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했더니 아직 왕십리역이란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똑똑이폰이라고 한들,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네가 엄마 말을 안 들으니 이런 일이 생기지…”라고 남들이 보건말건 무식하게 큰소리로 꾸짖었다.?
나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동네 대중탕은 아줌마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며느리가 출산을 했는데, 그 며느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속상하다고 하소연한다. 스마트폰 끼고 살면서 그 정보만 믿고 시어머니 말은 무시한다는 거다. 퇴원하고 바로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젖도 말라버리고 갓난아이는 배고프다고 우는데 배꾸리(위) 커지면 안 된다고 정량만 먹인단다. 그러니 며느리도 밉고 그놈의 스마트폰도 밉다는 거다.
최근에는 친구들을 만나도 그렇다. 서로 반갑다고 인사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기는 했지만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만 보고 있을 뿐 대화가 없다. 어쩌다 하나가 낄낄 웃으면서 “이거 정말 웃긴다. 내가 보내줄게”라고 하고, 다른 친구들은 그 글을 받아보고 이제야 같이 웃는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따라가지 못하는 놈만 바보다.
일본어사전
일본어어휘 시간에 일본 속담을 가지고 수업을 하기로 했다. 사전을 지참하라고 했다. 단어를 찾아서 그 내용을 확인하고 우리나라 속담 중 비슷한 것을 찾는 것까지가 오늘의 미션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전을 가지고 오지 않은 학생이 너무 많아서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놈들을 어떻게 꾸짖어야 할까 잠시 생각하는데, 한 학생이 “스마트폰 사용하면 안 되나요?” 종이사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자사전 정도는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들은 스마트폰 속에 만능 해결사를 하나 담고 다니니 그런 것을 준비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마트폰도 사전도 없는 학생이 두 명. 한명에게는 내 전자사전을 빌려주고, 다른 한명에게는 교탁의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했다. 전원 조용히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작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털사이트의 <일본어사전>에 단어를 입력하면 된다. 필기인식기가 있는 것도 있어서 모르는 한자는 마우스로 그리기만 하면 된다.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마저도 마우스로 그리면 된다. 참 편리하기도 하다. 한자 독음을 모르면 <한자읽기사전>을 뒤지고, 그 다음에 <일한사전>을 찾았던 작업이 이렇게 한 번에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보다도 더 놀라운 건 같은 화면에 ‘일본어 문장 번역기’가 있다는 거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입력하면 엇비슷하게 번역된다. 간혹 감탄사를 명사로 인식하는 등 치명적인 실수도 하지만.
번역기에 [하나요리 단고(花より?子)]라고 입력 했더니 [꽃보다 경단]이라고 번역되어 나온다. 똑똑한 우리 학생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포털사이트의 통합검색에 입력하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정확한 설명과 드라마의 타이틀 ‘꽃보다 남자’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도 더해지고 있다. 남자(男子)를 단시(だんし)라고 하는데, 자(子)를 ‘시(し)’만이 아니라 ‘고(こ)’라고도 발음하기 때문에 남자를 단고(だんご, 男=だん 子=ご)라고 우기는 거다. 물론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어다. 말장난, 일종의 언어유희라고 할 수 있다. ‘꽃보다 남자’는 ‘꽃보다 경단’이라는 일본어 속어와 글은 달라도 발음이 같다. 그러니 ‘꽃보다 남자’는 ‘금강산도 식후경’이 가지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금강산보다 꽃미남이 먼저라고나 할까….
이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방에 일한사전, 한일사전 그리고 옥편까지 챙겨서 낑낑거리면서 왔다고 해도 이토록 재미나고 실용적인 설명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공부하는 방법이 바뀌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스마트폰이 ‘똑똑이’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내가 ‘똑똑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