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2012년 런던올림픽①
(1) 올림픽 개막식과 여왕
2012년 런던올림픽이 시작되었다. 1896년 연설과 찬가만으로 서막을 올린 올림픽은 1908년 런던올림픽 때부터 선수 퍼레이드가 시작되었고 이후 개막식은 날로 웅장해졌다. 개막식의 예술 프로그램에서는 주최국의 아이덴티티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개막식은 7월27일 밤 9시 런던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막을 올렸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대니 보일(1956~ )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장면 하나하나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했는데 특히 여왕의 등장은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였다.
건장한 사나이 007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개회식 30분 전 버킹엄 궁에서 그녀를 수행하는 장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본드와 여왕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런던 상공을 지나 스타디움으로 들어오는데, 들어오자 핑크색 원피스 차림의 여왕이 낙하산을 타고 과감하게 뛰어내리고 이어서 제임스 본드도 뛰어내린다. 이런 영상이 상영됨과 동시에 스타디움 상공에는 실제로 헬리콥터가 날아 들어오고 유니온 잭 무늬의 낙하산이 두 개 펼쳐졌다. 8만 관중이 열광하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올림픽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상과 스타디움의 실제 상황이 적절하게 조합된 입체영화를 하나 만든 셈이다.
영국에서 열리는 3번째 올림픽이다. 104년 전, 1908년 런던올림픽 때는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단이 에드워드 7세와 알렉산드라 왕비에게 인사를 하고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헌데 가슴에 성조기를 단 랠프 로즈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이 국기는 지상의 어떤 왕에게도 경례를 붙이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마라톤의 거리가 42km에서 42.195km로 연장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영국왕실은 윈저 성의 육아실 아래에서 출발해 스타디움의 귀빈석 즉, 왕이 앉은 자리까지의 거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왕과 그 가족이 잘 볼 수 있도록 국제경기의 규정을 바꾼 셈이다. 왕이 강하기만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유머러스한 등장은 결코 여왕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폄하되지 않았다. 전세계 사람들이 여왕을 보다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NBC는 “역대 가장 기억에 남는 입장을 한 것 같다”고 했다. 21세기 지금도 지구상에는 많은 왕들이 존재한다. 그 누가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등장을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2) 국가(國歌)
이어서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울러 펴졌다. 국가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아니다. 오로지 여왕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하느님, 저희의 자비로우신 여왕폐하를 지켜 주소서. 고귀하신 저희의 여왕폐하 만수무강케 하사…폐하께 승리와 복과 영광을 주소서.’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하지만 영국연방의 여러 나라에서도 이것이 국가란다.
일본의 기미가요
국가의 가사를 논한다면 일본의 국가 역시 만만치 않다. 10세기 초에 완성된 일본고유의 시가집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에 실린 작가미상의 시가 ‘내 님이여 천년만년 사소서 작은 돌이 바위가 되고 이끼가 낄 때까지(我が君は千代に八千世さざれ石の巖[いわお]となりて苔のむすまで)’가 그 원형이라고 하는데, 시작부분이 다르다. 일본 국가는 ‘내 님’이 아니라 ‘천황의 치세’ 즉 ‘기미가요(君が代)’로 시작한다. 1018년경 성립한 <와칸로에이슈(倭漢朗詠集)>이후의 가집에 이렇게 바뀌어서 등장하는 것이 압도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축연의 시가로 여러 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에도시대에는 ‘바위가 되고(巖=남성기, ほと=여성기, なりて=성교를 가리킴)’ 부분에 남녀성교의 의미를 더해서 경사의 시가로 사용했다고 하니 재미난 사실이다.
국가란 원래 근대서양에서 탄생된 것인데, 일본은 개항 당시 외교의례상 필요했다. 궁내성 아악과 하야시 히로모리(林廣守, 1831~1896)가 제작한 것에 독일의 해군군악교사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1916)가 서양풍 화음을 붙여서 완성한 기미가요는 1880년 11월3일 메이지천황 탄생일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메이지 정부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기 위해서 ‘히노마루(日の丸)’와 더불어 기미가요를 일본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실질적 국가로 사용했다. 특히 문부성은 소학교의 기념식에 반드시 제창하도록 했으며, 각종 교과를 통해서 기미가요 교육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히노마루 게양은 금지되었고 기미가요는 한동안 불리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본정부는 국민의식 고양을 위해서 기미가요를 국가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다. 특히 교육현장에서는 학습지도요령을 통해서 “행사시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제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으며, 1989년에는 “국기를 게양함과 동시에 국가를 제창하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개정해서 현재는 의무화되었다.
1999년 일본정부는 드디어 공식적으로 국기 국가법을 제정하고,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 확고부동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기미가요의 ‘기미(君)’는 헌법에서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 총의에 기초한다’는 천황을 뜻하고, ‘요(代)’는 본래 시간적 개념이지만 전하여 ‘나라’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전제한 다음 “일본국민 총의에 기초하는 천황은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을 상징하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미가요는 나라의 영원한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실질적 국가로 존재했던 기미가요에 대해서 일본의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일본의 우익보수파로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숱한 망언을 남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太?, 1932~ )조차도 마이니치신문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기미가요는 싫다. 가사가 일종의 멸사봉공(滅私奉公) 같은 내용이다”고 한 적이 있다.
남의 나라 국가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영국의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울러 퍼지는 가운데 나는 잠시 일본의 국가를 언급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전후의 가장 유명한 일본연구가 첸바렌(Basil Hall Chamberlain, 1850~1935)이 영어로 번역한 일본 국가를 소개하겠다. 이것을 보면 일본 고유의 시가로서 압축된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우리에게 느껴질 것이다.
Live on, my Lord, till what are pebbles now,
By age united, to great rocks shall grow,
Whose venerable sides the moss doth line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도 쇼와천황이 착석하자 기미가요가 제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