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반야, 대중목욕탕, 센토

반야

사할린에 두 달가량 머문 적이 있다.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아야 했던 우리 동포들의 애환을 담고자 떠난 촬영팀을 따라 갔는데, 두 달이라는 시간은 길었다. 사할린의 겨울은 추었고 스텝들과 보드카를 즐기는 것도 싫증이 날 무렵, 내가 찾은 즐거움의 하나가 ‘반야(vanya, 러시아식 목욕)’였다.

숙소에서 30분 거리에 여럿이 이용할 수 있는 상당히 큰 반야가 있었다. 반야는 장작불로 달궈진 조약돌에 물을 끼얹고 거기서 나오는 증기와 열기로 몸을 데우는, 이른바 증기욕이다. 내가 간 곳은 마치 대중목욕탕 같은 곳으로, 120도를 넘나드는 증기탕이 몇 개나 있었고 간단한 샤워시설이 있었다. 그리고 생뚱맞게도 25미터나 되는 수영장이 있었다. 카운터에서는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시트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을 뒤집어쓰고 증기탕에 들어가면 숨이 콱콱 막힌다.

현지인들은 자작나무 가지를 묶어서 빗자루처럼 만든 것을 가지고 서로의 몸을 두드려주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마구 때리기도 한다. 이것을 ‘베니크’라고 하는 모양인데, 하루는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으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할린 아주머니가 노란 벌거숭이의 등도 두드려주었다. 뜨거운 열기가 마치 바늘처럼 찌르는데 나쁘지 않았다. ‘스빠시바 스빠시바’ 사할린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온몸이 빨갛게 익으면 알몸으로 수영장으로 풍덩! 그리고 몇 바퀴 돌고나면 마음의 때까지도 씻긴 듯했다.??

그래도 귀국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물음에, 바로 대중목욕탕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철철 넘치는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고, 빨간 이태리타올로 때도 싹싹 밀고 싶었다. 팔을 쭉 뻗어야 겨우 엄마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을 때부터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닌 목욕탕의 맛을 나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대중목욕탕

하루를 동네 목욕탕에서 시작하는 날이 있다. 유독 할 일이 많은 날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은 말 그대로 ‘목욕재계’를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우리 동네에는 ‘옥탕’이라는 이름도 촌스러운 대중목욕탕이 있다. 비록 낡고 오랜 된 곳이지만, 이곳에는 항상 물이 넘치고, 사람이 넘치고, 이야기가 넘친다. 사우나 안에는 소금항아리가 있는데, 모르는 사람의 등을 소금으로 썩썩 문질러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정보는 여기에서 다 얻는다. 용한 한의원, 신통한 점집, 족집게 학원,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재테크 정보까지 뭐든 다 얻을 수 있다. 1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고 아침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하루의 시작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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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토

한편 일본의 대중목욕탕, 일명 ‘센토(?湯)’는 하루의 마무리를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생활할 때,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가족은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인근 센토를 찾는 일이 하루를 정리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습도가 높은 일본의 여름은 무덥고, 끈적끈적해진 몸은 매우 불쾌한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센토다. 온돌방 아랫목이 그리운 추운 겨울, 몸을 데울 수 있는 곳 역시 센토다. 남탕 여탕으로 따로따로 들어갔다가 시간 맞추어 센토 출구에서 만나면 아이들에게는 라무네 하나씩 사주고, 신랑과 나는 자동판매기에서 맥주를 빼 마시면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였다. 라무네 병 안에는 구슬이 들어있어서 거꾸로 들어서 마시려면 입구를 막아 방해한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들은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하고 들고 있다. 센토는 대개 오후 늦게 문을 열고 밤 12시까지 영업을 한다.

센토의 구조는 재밌다. 남탕과 여탕은 벽이라기보다는 칸막이 하나로 나뉘어져 있다. 천정부분까지 막혀 있지 않아 칸막이 너머로 샴푸나 치약을 던져주는 일도 가능하고, “○○아빠, 지금 나가요”라고 큰소리로 말하면 “오~케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카운트는 입구에 하나, 칸막이 사이에 남탕과 여탕 탈의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앉아있기도 하고 때로는 아저씨가 앉아있어서 민망한데, 이건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센토, 특히 동일본 센토의 욕조는 안쪽 벽면에 위치한다. 벽면에는 페인트 혹은 타일 모자이크로 후지산, 칠복신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센토의 페이트화 그리는 사람을 ‘장인’으로 인정하고, 센토라면 벽면의 그림을 연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수도꼭지 앞에 깔개를 깔고 꿇어앉아서 옆 사람에게 물 방물 하나 튕기지 않게 조심조심 몸을 씻는다. 욕조의 물에 바가지를 담근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오로지 몸을 데우는 데만 이용된다. 욕조 안의 사람 중에는 수건을 접어서 머리에 얹고 있는 사람도 있다. 열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는 등 여러 설이 있는데, 실은 일본사람들은 목욕탕에서 이동할 때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다닌다. 그러니 탕에 들어가면 수건을 둘 곳이 없어서 머리 위에 올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중목욕탕은 대개 욕조가 중앙에 위치한다. 물론 아닌 곳도 있지만, 하여간 사람들은 그 주변에 둘러앉아서 씻기를 좋아한다. 가장자리에 마련된 수도꼭지 앞에서 조용히 씻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욕조의 물을 바가지로 퍼서 시원하게 뿌리면서 씻는 것을 즐긴다. 이거야말로 대중목욕탕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간혹 옆 사람이 뿌린 물이 내 몸에 닿기도 하지만 그거야 뭐 문제될 게 없다. 물 한바가지 더 끼얹으면 되는 일이다.

알몸으로 만나는 대중목욕탕 속에도 이렇게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

One Response to [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반야, 대중목욕탕, 센토

  1. 이미령 January 9, 2012 at 1:25 pm

    벌거벗고 탕 속에 있으면 감출것 없고 꾸밈이 없어 좋다. 또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여서 나는 딸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으면 목욕탕을 찾는다. 걸친것이 없으니 군더더기 없는 진실함이 나온다. 우리 모녀는 목욕탕을 통해 세상사는 이야기를 즐기는데… 목욕탕 글을 읽고 있으니 친근함을 느낍니다. 어느 나라나 묶은 때는 가지고 살아가나 봅니다. 벗기는 방법도 다 갖겠지요?
    고선윤후원자님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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