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과 디테일은 결코 따로 가지 않는다
북한 해군은 1970년대 초 소련의 스틱스미사일을 도입하면서 우리 해군보다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이후 1973년 가을부터 지속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고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 연장선을 남북간 해상경계선으로 주장하는 등 NLL 무실화 명분을 축적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북한은 1999년 6월 연평해전을 일으켰는데 북한 해군의 수동식 사격통제장비는 자동식 사격통제장비를 갖춘 우리 해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에 놀란 북한군은 와신상담하다가 2002년 월드컵 와중에 한국군 통수부의 허를 찔러 서해교전을 일으켰다.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을 군수뇌부도 종종 북미 장성급 회담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한반도 평화문제를 북미간의 문제로 하고 한국은 아예 제외하려는 것은 북한의 일관된 전술이다. 이와 관련한 모(某) 장관의 실수를 실무국장이 지적하여 국회 속기록을 수정한 일도 있다. 이처럼 남북간이든 한일간이든 기록을 쌓아나간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8월21일 제252차 국가안보회의에서, 1)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상호 보완의 관계로서 주한미군에 대한 이견 등은 국민 갈등의 소지가 있으므로 국민적 합의 달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2)주한미군 재조정(미2사단 재배치/임무전환 등)은 한반도 전쟁억제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하되, 시행시기는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안보상황에 맞추어 조절하도록 미측과 협의할 것 3)연합지휘체제 발전도 자주국방 구축 시기 및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과 연계하여 추진하되, 한미간에 기본방향을 공동연구하여 2005년 SCM에 보고하도록 하라는 지침을 주었다. 이는 흔히 알려진 노무현의 대미관(對美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권 초기에 이런 생각을 가졌던 노무현이 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전환이라는 악수(惡手)로 줄달음친 데는 미선 효순사건 이래 한미간의 상호신뢰가 부족하고, 더욱이 이를 대통령에게 차분히 설명하지 못한 국방부장관과 386세력에 휘둘린 안보수석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노무현은 NLL은 “미군이 땅따먹기로 그은 선이 아니냐”는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국방부가 NLL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자료를 모아 “NLL은 육상에서의 군사분계선(MDL)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는 입장을 정립하여 국방부장관의 국회답변을 통하여 공식화한 것은 연평해전 이후다. 노무현은 그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건성으로 보고를 받아서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NLL과 관련하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언’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찍부터 튀는 발언과 행동으로 주변을 놀라게 만든 노무현의 변설(辯舌)은 장관들이 웬만해서는 따르지 못한다. 더욱이 논리와 근거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결론만 보고 받아서 알고 있는 장관으로서는 ‘대통령 노무현’을 이해 설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토론은 상대가 하나를 알고 있으면 적어도 셋, 넷, 나아가 바람직하게는 열을 알고 있어야 능숙하게 끌어갈 수 있다. 노무현의 잘못 가운데는 당시 관계 장관과 참모들의 책임은 없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전략적 대강을 제기하는데 탁월하면서도 이를 실현하는 디테일에 아울러 강했던 박정희의 통치방법을 하루 빨리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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