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박근혜가 대처에게 배워야 할 것들

대처리즘의 핵심에는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독립적 인격’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는 개인 불행의 원인을 사회에 돌리고 국가가 이를 치유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사회주의의 근본적 문제라고 보았다. 유럽 문명의 근간에 있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행위에 책임을 지는 개인을 사회의 근본으로 하여 출발한다. 근대인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의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정언(定言)은 독립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인격이 사회를 구성하는 원자적 요소임을 전제한다.

대처의 경제정책은 이러한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경제에서 국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기업인에 최대한의 자율을 보장하여 맡겨야 하며 정부는 건전한 재정운영과 노사관계의 정상화를 돕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정부는 세입을 줄이고 그 잉여부분을 기업가들에게 돌려주어 부의 재분배보다는 재창출에 더 유효하게 쓰이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전후 복지사회에 길들여져 온 영국민 일반, 특히 저소득층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노동당, 그리고 정부의 중요한 책무는 이러한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보수당 내의 겁쟁이들로 부터 많은 저항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었다.

세금은 정부가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정치인들은 재정을 방만하게 풀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화폐 공급량을 늘리면 인플레를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세출은 반드시 세입 범위 내에서 지출하는 건전재정을 확립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처 경제정책의 골간을 형성하였다.

자신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르지 않도록 유언하고 특히 공군기 편대에 의한 추모비행은 국방비 낭비이니 하지 않도록 한 것은 마지막까지 국가와 재정을 생각하는 대처를 보여주고 있다.

캘러헌 노동당 정부가 붕괴된 1979년 겨울 영국은 이른바 ‘The Winter of Discontent’로 불리는 상황에서 사실상 정부 기능이 마비된 지경에 이르렀다. 대처는 애틀리 이래 30년에 걸친 사회복지 국가의 실험은 실패하였고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며 따라서 영국 사회의 전반적 개혁이야말로 보수당이 국민으로부터 받은 위임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는 정부와 사회가 개인을 돌봐주는데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의욕과 창의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건전한 시민이 바람직한 영국 국민상임을 확신하였다.

노동당 정부에서 노동조합은 사실상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는데 대처는 이들을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산업평화, 나아가 적극적 기업활동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어떠한 희생과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법과 상식을 벗어난 노동조합의 횡포를 규제하여 질서를 잡아놓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과격분자들의 위세나 조작으로 소수 강경파가 노조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유도하였다. 이에 대한 가장 완강한 저항은 탄광노조 파업으로 시작되었다. 1983년 선거에서 대처 정부가 다시 승리하자 이제 선거로는 정권을 잡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노동당 좌파들은 사회 경제적 혼란으로 대처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하였다.

대처는 탄광노조 파업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하여 기간산업체의 석탄보유 예비량을 증가시키는 등 준비를 하고 파업에 대비하고 있었다. 탄광노조를 이끈 Arthur Scargill은 마르크스주의자임을 공언하였다. 대처는 그를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영국의 체제전복을 기도하는 파괴적 선동가로 보았다. 대처는 탄광노조의 총파업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결’로 몰아가려는 노조측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이를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파업을 강행하려는 ‘소수의 극단적 노조 지도자’와 ‘다수의 선량한 노조원’들 간의 대결로 규정했다.

정부는 다수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조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한다는 입장에 섰다. 대처는 소란이 무서워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경찰과 노조를 1:1로 다루고 있는 것에 분개하여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강제력 행사와 법을 깨뜨리려는 극단분자들의 폭력을 같은 선상에서 다루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하였다.

파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노조 집행부는 초조해지기 시작하였고 극단적 노조 지도층이 리비아의 카다피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도덕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석탄노조가 치욕적인 패배를 당할 것을 우려한 노동조합총연맹은 대처에 협상을 제의하였다. 총파업을 중단하는 대신 정부와 석탄공사, 탄광노조 간에 새로운 석탄정책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대처의 응답은 냉정하였다. 모든 협상은 노동자들이 먼저 직장에 복귀한 뒤에야 이루어질 수 있으며, 채산성이 악화된 탄광폐쇄 중지를 먼저 보장하라는 등의 요구는 일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85년 3월 탄광노조 집행부는 총파업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탄광노조 파업과 그 결말은 영국의 노동운동 나아가 영국의 정치상황에 일대 분수령이 되었다. 이제 소수의 노조를 앞세우고 국민을 볼모로 삼아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다.

탄광노조 파업을 성공적으로 수습한 대처는 과연 철의 여인(Iron Lady)임을 입증하였다. 대처의 승리는 장차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 적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을 명분 면에서 무장을 해제시키는 분명한 논리, 원칙에 충실하고 큰 승리를 위해 작은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는 의지, 그리고 이를 국민들에 설득하고 끌어나갈 수 있는 정치력 등에 힘입고 있었다.

사회주의의 가장 큰 폐단이 개인이 국가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의존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경향은 지방정부가 스스로 건전재정을 확립하기보다는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데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나 있다고 대처는 보았다. 당시 지방정부의 재정은 재산에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domestic rate 시스템이었는데 대처는 이를 지역주민 모두가 지방정부의 재정을 분담하는 제도인 community charge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 노동당은 이를 인두세(人頭稅)라고 선동하였고 보수당 내에서도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제안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커졌다.

결국 대처는 임기 중 이 제안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디즈레일리를 능가하는 집권기간 동안 누적된 당내의 반발에 부딪쳐 부군 데니스경의 권유에 따라 사임하게 된다.

이번 대처의 장례식에 “마귀 할멈은 죽었다”는 데모가 트라팔가광장에서 벌어진다고 하는데 이는 명분과 전략, 모든 면에서 패배한 자들이 벌이는 마지막 굿판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를 제대로 공부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