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박정희 ‘국민교육헌장’과 박근혜 ‘교육대통령’

박정희는 1968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을 공포하였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은 당시 모든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암송하였다. 국민교육헌장에 대해서는 당초 논란이 적지 않았다. 특히 박정희의 독재권력이 강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나온 것이라 비판이 많았다. 당시 ‘한국의 칸트’로 불렸던 박종홍 교수는 헌장 제정에 참여하였다가 후학들로부터 “참여하시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말을 들었다. 더욱 헌장은 일본의 교육칙어를 연원으로 한 것 같았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명치시대의 교육칙어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아는가? 여기에는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건너간 퇴계학이 깊게 녹아 있다. 국민교육헌장은 우리 선인들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근세서양의 교육철학을 포괄하고 있는 장전이다. 버릴 말이 하나도 없으며, 더할 말도 없다. 마치 기독교의 주기도문 같다. 우리들 후학들은 귀한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시기에 공포된 군인복무규율, 특히 강령은 박정희 시대 군인들의 지향을 담고 있다. 이병형 장군이 주관하고 이병도 이선근 박사 등이 참여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박정희 작품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군인복무규율은 일본의 군인칙유(軍人勅諭)가 전범이다. 군인칙유는 근대군대의 효시인 프러시아 군대 직업군인의 핵심을 계승한 위에 일본의 무사혼(武士魂)을 강조한 것이다. (군인복무규율은 10월유신 후 수정이 가해져서 정신이 훼손되고 다소 격이 떨어지는 감이 있으니 1968년 공포될 당시의 원본을 보아야 한다)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과 군인복무규율로써 국민과 군인의 정신적 근원을 확립하고자 했다. 산업화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마당에서 국민정신의 기본을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신문화연구원의 설립도 같은 궤도에 선 것이다.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적 책무라고 한다면 우선, 박정희의 정신을 잇는 ‘교육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기본을 바로잡는 것이 필수적 과업이지만, 나아가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와 헌법제정의 의미를 높이기 위해 1948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한 건국절을 제정하여야 한다. 이 바탕위에 국민의 정신적 지표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국민교육을 이끄는 교육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국민교육헌장을 되새겨 본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중략)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고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중략)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새 역사를 창조하자.”

대한민국의 ‘正統’ 대통령의 길을 여기서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