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미국이 리비아를 공습하였을 때 영미관계는 상당히 불편한 상태였다. 1985년 12월 로마와 비엔나 공항, 그리고 1986년 9월 비엔나 공항, 1986년 9월 서베를린의 디스코 테크에서 폭탄테러가 연이어 일어났다. 특히 서베를린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배후에 리비아의 카다피가 연관되어 있음이 들어났는데 이를 계기로 레이건은 카다피를 응징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대처는 리비아에 대한 응징이 보복의 악순환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였는데 당시 리비아에는 5000명의 영국인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가렛 대처는 테러리즘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응징이 필요하다는 명분과 영국이 협조를 거절하였을 때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이 영국에 대해 갖게 될 감정 등을 생각하여 미국에 적극 협조하기로 하였다. 미국은 영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F-111전폭기가 리비아 공습에 참가할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대처는 야당과 내각 내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요구를 수락하였다. 포클랜드전쟁 당시 수천 마일을 항해하는 원정함대에 적시적인 방대한 군수지원을 가능케 해준 미국의 지원을 생각하더라도 이를 수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프랑스는 미군 전폭기가 자국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스페인은 미군기가 영공을 통과하는 것은 허용하나 이 사실이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상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달았기 때문에 영국 기지에서 발진한 미군 전폭기는 지브랄타르 해협을 통과하여 리비아를 공격하였다. 사막에서 거처를 옮겨가며 은신하던 카다피는 간발의 차이로 폭살은 면했으나 같이 있던 딸은 희생되었다. 대처는 영국 언론이 미국의 리비아 응징의 당위성보다는 폭격을 받은 리비아 인들의 참상을 과장 보도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다. 이처럼 대처는 동맹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작은 손해는 감수할 수 있다는 냉철한 계산과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갔다.
동맹 간에도 원론적으로는 일치하나 사안에 따라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수시로 생긴다. 이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오랜 기간을 통해 이루어진 상호신뢰이다. 국가 간의 신뢰관계는 최고위층 간의 이해로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통령과 대통령, 장관과 장관, 국장과 국장, 의회와 의회, 언론과 언론, 모든 부문과 차원에서 신뢰관계를 차근차근 쌓아나가야 결정적일 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협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외교에도 인간사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정성이 중요한 것이다.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을 둘러싸고 진전이 수월치 않은 것 같다. 동맹 간에도 한번 신뢰가 손상되면 이를 복구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 정부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아무리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도 미국내 여론은 핵무장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 전문가들의 예를 들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특히 노무현 당시 미선 효순 사건때 한국 정부가 보여준 태도에 미국인들은 깊이 실망했던 영향이 크다.
우리 국민과 정부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신뢰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회복에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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