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을 하던 박정희시대에는 대통령 인계·인수위라는 것을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던 때에도 인수위는 필요 없었다. 두 달에 걸쳐 대통령 인수 인계가 이루어진 것은 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넘어가면서부터다. 한마디로 통치에 참여하지 않던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면서다.
00정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지 않는다. 노태우는 ‘보통사람들의 정부’를 표방하였으나, 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김영삼이 ‘문민정부’라고 내건 것이 효시다. 1961년 5·16 이후 30년에 걸친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는 자부심이 높아서 만든 작명이겠지만, 6·29를 이끌어낸 6월시민항쟁의 의의를 제대로 안다면 자제했어야 했다. 김대중이 ‘제2의 건국’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오는 25일 출범하는 새정부를 ‘박근혜 정부’라고 부르기로 하였다니 그나마 제대로 돌아온 것이다.?
일각에서 논의된 대로 ‘미래정부’ 혹은 ‘여성정부’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두 개의 정부가 혼재하는 시기는 대단히 혼란스럽다. 들어오는 권력은 정치적으로는 막강하나 법적으로 책임은 지지 않는다. YS시절 말기 DJ가 외환위기 극복을 사실상 진두지휘하던 것은 드문 일이며 이런 우연은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이번 특사(特赦)도 그렇다. 욕을 먹든 말든 현재의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행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나쳤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중에 자기라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청문회도 문제다. “염라대왕 앞에 선 것 같다” “젖 먹던 때 죄지은 것까지 생각해낸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인수위에서 정부 부처를 통폐합하는 것도 큰 잘못이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인가? 정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물러나는 대통령과 상의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해 변경하여야 한다.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와 로비를 피하기 위해 집권 초기에 한다고? 이런 엄청난 일을 정부 운영에 경험이 없는 교수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최고의 권위 있는 전문가는 역시 역대 대통령과 총리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대통령제를 근본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마치 왕조가 교체되는 것 같은 소동을 피운다. 대표적 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서 야당은 항상 준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정부다. 의회에서는 항상 현 정부(Government of the day)와 야당(Queen’s opponent)이 병립한다. 정부를 구성하게 되는 60여명의 의원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사람들로 정치성향, 능력 및 인품은 이미 충분히 공개되어 있어 새삼 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 다만 정부에서 활동하게 되면 MI-5에서 한번 더 검증을 하여 수상에게만 보고하여 내각에서 제외한다. 한국에서처럼 언론에서 검증을 한다고 시시콜콜 캐보는 인민재판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언론을 통하여 여론을 들어볼 수는 있겠지만 당선인이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으니 언론에서라도 들여다본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의원내각제에서는 선거에 패배하든가 (대처 수상이 물러날 때처럼) 집권당내에서 지도부가 교체되어 신정부가 구성되면 즉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상시 의회에서 국정을 논하고 참여하던 의원들이라 바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두 달여 과정을 통해 정부를 인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정치와 통치는 프로가 한다. 이것이 선진국이다.
Related Posts
- [김국헌의 직필] '김일성 족적' 알면 '3대세습 비결' 보인다
- [김국헌의 직필] "창이 한발 짧으면, 한걸음 앞으로 나가라"
- [김국헌의 직필] 대통령의 참모 장악법 "전화 5번 울려도 안받으면 잘라라"
- [김국헌의 직필] DMZ, 남북관계 새 장 여는 통로로 ‘최적’
- [김국헌의 직필] '정보기관스캔들' 명해결사 레이건
- [김국헌의 직필] 영국의 제국 경영술
- [김국헌의 직필] 박대통령, '박정희 정보기관 악용' 답습해선 안돼
- [김국헌의 직필] 유럽 위기에서 배워야 할 것들
- [김국헌의 직필] 동맹간 신뢰가 중요한 이유는?
- [김국헌의 직필] 한국외교, '삼각편대 전략'으로 나아가야
- [김국헌의 직필] '지방의원 보좌관제' 될 말인가?
- [김국헌의 직필] 박근혜가 대처에게 배워야 할 것들
- [김국헌의 직필] 북-미 빅딜
- [김국헌의 직필] 햇볕정책과 '아편론'
- [김국헌의 직필] 장수왕의 평양, 김정은의 평양
- [김국헌의 직필] 북의 '하이브리드전략'에 맞설 대전략은?
- [김국헌의 직필] “前 장군은 없다”
- [김국헌의 직필] 팀워크가 중요한 이유
- [김국헌의 직필] 어떻게 이룩한 정부인데…
- [김국헌의 직필] '혈액형청문회' 그리고 남재준과 유인태
- [김국헌의 직필] '아시지의 聖' 교황 프란치스코와 피겨여왕 김연아
- [김국헌의 직필] '장군골프사건'이 문제되는 또다른 이유
- [김국헌의 직필] '행정의 달인' 고건의 대북관을 보며
- [김국헌의 직필] 국민이 바라는 장군이란?
- [김국헌의 직필] '정치적 천재' 달라이 라마와 중국 군관의 '호사'
- [김국헌의 직필] "MD 프로젝트 더 미룰 수 없다"
- [김국헌 칼럼] 북핵, 중국도 위협할 수 있다
- [김국헌의 직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괴물
- [김국헌의 직필] 중국이 박근혜 주목하는 이유···“자식 양육은 국가대사”
- [김국헌의 직필] 중국의 속셈과 주한미군
- [김국헌의 직필] 청와대 3실장(비서·경호·안보)에게 바란다
- [김국헌의 직필] 지금 '제헌 정신'을 돌아보는 이유
- [김국헌의 직필] 박근혜가 박정희한테 꼭 배워야 할 것은?
- [김국헌의 직필] 인재 안 키우면 나라의 미래 없다
- [김국헌의 직필] 남한 핵무장으로 북핵 대응한다고?
- [김국헌의 직필] 북핵해결을 위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김국헌의 직필] 핵전략 외교관에만 맡겨선 안돼
- [김국헌의 직필] 노태우와 연좌제, 그리고 인사청문회
- [김국헌의 직필]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가 북핵 위기 '방어선'
- [김국헌의 직필] '비서실장'이라는 자리
- [김국헌의 직필] '선거의 여왕' 통치는 초년병···박근혜의 해답은 어디?
- [김국헌의 직필] 과학전공 박근혜가 나로호 성공에서 배워야 할 것들
- [김국헌의 직필] '이동흡 김용준사태'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 [김국헌의 직필] "감사원은 누가 감사해야 하나"
- [김국헌의 직필] 키신저, 주은래 같은 '지략가' 어디 없소?
- [김국헌의 직필] 대등한 외교
- [김국헌의 직필] 차안에서 '하회' 기다리는 인수위원장···'무엇을, 어떻게'가 해답이다
- [김국헌의 직필] 하라 세쓰코와 맥아더, 그리고 역사인식
- [김국헌의 직필] 성공적인 국정은 관료 장악에 달려있다
- [김국헌의 직필] 남북 문화공동체 회복은 통일의 선결과제
- [김국헌의 직필] 역대총리 성적? JP 김황식 강영훈 이한동 이해찬 이회창 노신영···
- [김국헌의 직필] 통일한국의 수도로 '교하'를 떠올리는 까닭은?
- [김국헌의 직필] 말 한마디의 '무거움'과 '무서움'
- [김국헌의 직필] 박근혜의 '책임총리제' 성공하려면
- [김국헌의 직필] 박정희 '국민교육헌장'과 박근혜 '교육대통령'
- [김국헌의 직필] 마쓰시다 정경숙과 노다 전 총리
- [김국헌의 직필] 어설픈 독도 전문가들
- [김국헌의 직필] 안보·통일 아우르는 '국가안보실'로 대전략 수립해야
- [김국헌의 직필] '사랑받는 대통령'의 조건
- [김국헌의 직필] 박근혜, 통일대통령을 꿈꾼다면···
- [김국헌의 직필] 군통수권자 박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