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환호와 축복 그리고 기대 속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였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구성되지 않은 가운데 새 정부가 출발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 때문이다. 여야는 서로 협상력의 부족이라고 책임을 미루나, 그 내막은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한’ 야당의 심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참에 사태를 좀 더 본질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이 시점에서 그와 같은 조직개편이 필요한가? 이승만정부에서는 12년 동안 외무 내무 재무 법무 국방 문교 부흥 농림 상공 보사 교통 체신 등 12개 부처에 거의 변경이 없었다. 박정희정부에서도 경제기획원 신설을 제외하고는 부처 단위의 조직개편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민주화 이래 정부조직이 왜 이리 요동치는가?
외무부에서 통상기능을 떼어낸다는 것을 보자.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장관은 통상업무를 외교부에서 분리하더라도 미국의 USTR처럼 대통령 직속이나 총리실에 독립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김종훈 의원만한 전문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당선인의 생각은 요지부동이었던 것 같고 누군가 수용을 건의하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단연코 아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짐작이요 걱정이다. 이런 일들은 ‘촉새같이 나불거리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일이다. 상하관계가 엄정하기 이를 데 없는 군에서도 건의를 중시한다. “한번, 두번, 건의하되, 세번째는 종용(慫慂)히 상관의 뜻에 따르라” 이것이 트루만 대통령의 금언(金言)이다. 장교는 사관생도 때부터 이것을 조직관리와 리더쉽의 기본으로 배웠다.
어찌 됐든 조직에 관한 권한은, 정부가 됐든 기업이 됐든, 인사권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집행부의 전권이요 책임이다. 주주총회에서는 결과 즉 수익(收益)만을 따질 뿐이지 이런 문제까지 간여하지 않는다. 미국에는 장관들이 모여서 정부의사를 결정하는 내각(cabinet)이 없다. 링컨은 다수 장관이 반대하는데도 자신만의 의사로 관철하면서 “이것으로 정부 의사는 결정되었다”고 하였다.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대통령이 정부 수반, 아니 정부 그 자체이며 장관은 대통령의 secretary 즉 비서에 불과하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권한도 대통령에게 주어져야 한다. 정부조직을 법률로서 정하도록 한 것은 예산과 같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안을 법률로 정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정부조직은 정부가 필요시 융통성, 기동성 있게 운용할 수 있도록 법률이 아니라 행정명령으로 정한다.
마지막으로, 국회가 이런 방법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국회에서 대화와 토론을 거쳐서 결론에 도달하는 절차를 거치는 과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로 하여야 한다. 이것이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는 떼법은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헌정질서 문란행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을 국가번영 위에 놓고 문화융성을 표방한 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걸음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헌정질서는 아직도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점이 많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 1948년에 제헌헌법을 만든 분들의 헌법의식은 탁월했다. 그러나 유신헌법 등으로 우리 헌법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1987년 단임제 헌법을 만들 때에도 그 정신과 지혜는 제헌헌법에 훨씬 못 미쳤다.
이런 근본을 천착(穿鑿)한다면 이번 헌정 초유의 사태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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