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마쓰시다 정경숙과 노다 전 총리
노다 요시히코 일본 전 총리는 마쓰시다 정경숙(政經塾) 1기 출신이다. 영국의 이튼, 해로우나 프랑스의 그랑제꼴을 보게 되면 그 국가의 미래상을 알 수 있다. 패전 전 일본의 고등학교도 이러한 성격의 엘리트 양성기관이었다. 고등학교는 일본 전국에 7곳 밖에 없었는데 이들은 소위 ‘넘버 스쿨’이라고 불렸다. 동경의 一高, 경도의 3고 등이다. 중학교 졸업생이 대학 예과를 거쳐 본과로 진학하는 데 비해 고등학교 졸업생은 바로 본과로 진입하였다. 고등학교에는 일본과 조선의 수재들이 모여 들었는데 조선인 중에 동경제국대학 출신은 간혹 있었지만 一高 출신은 주요한 등 몇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한국의 명문고등학교 가운데는 광주일고가 이 분위기를 풍겼다. 이 一高가 얼마나 부러웠든지 김대중 전 대통령 출신학교인 목포상고를 ‘全南一高’로 개명하였다.
패전한 일본은 구제 학제를 폐기하고 미국식의 3·3제 학제를 받아들였다. 고등학교도 폐지되었는데 일본인의 고등학교에 대한 향수는 강했다. 마쓰시다 정경숙은 ‘경영의 신’이라는 마쓰시다 고노스께가 고등학교나 프랑스의 ENA를 지향하여 만든 특수학교다. 노다는 숙(塾)의 1기생이다. 육사 11기생이 모든 이의 관심과 기대의 적(的)이 되듯 어느 조직이나 1기생의 역할과 비중은 남다르다. 그런데 지난 해 노다의 행적을 보면 마쓰시다 정경숙의 교육도 신통치 않았는가 보다. 塾에서는 먼저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다고 하는데, 노다는 우선 인간의 기본이 안 됐다. 마쓰시다 고노스께가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사람이 고작 그 정도였는가? 솔직히 우리는 일본이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든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마쓰시다 정경숙 류의 조직이 어디서 ‘요상한’ 생각들을 주워 와서 궁리하는 소굴이 된다면 인근(隣近)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쓰시다 정경숙이 진짜로 추구한 것은 다시는 패전을 안 할 일본을 이끌 인재를 키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으로 쇼와(소화 昭和)시대를 끌어온 각계 지도자들이 후계를 육성한 것이다. 일본의 전후 처리가 노다 정부 시절처럼 전혀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은 맥아더와 히로히도의 품안에 숨어들어 ‘제2의 대동아공영권’을 획책하는 무리들이 고스란히 남아 마쓰시다 정경숙 같은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2류, 3류가 일본 사회를 이끌고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아데나워와 드골이 이룩한 독·불의 역사적 화해 같은 것은 요원하다. 위안부가 강제였다는 증거를 한국이 제시해 보라는 사람을 총리로 만들어내는 일본 국민의 정치와 의식수준에서는 빌리 브란트가 아우슈비츠에서 털썩 무릎을 꿇던 데서 받은 감동을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의 지도자나 전문가가 아시아를 이해하는 깊이는 아무래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마샬이 중공을 다룬 것이나 키신저가 월남을 다룬 것이 그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대중전략을 위해 한일간의 이해와 협조가 긴요한 시점이기는 하지만 일본인들의 의식수준이 현재에 머물러서는 성과는 무망(無望)이다. 한일중 3국의 최근세사를 알려면 박경리의 <토지(土地)>와 같은 대서사시를 읽어보아야 한다. 베네딕트류의 몇가지 다이제스트를 읽고서 대아시아 정책을 구상, 추진한다고 하는 것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