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전범 히로히토’ 이제라도 책임 물어야

맥아더는 신(神)이었다. 그러나 6.25때 중공군에 황망히 쫓겨 미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패전을 초래하였을 때 군인으로서 맥아더 신화는 종말을 고했다. 맥아더에 감사하는 마음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분간 못 해서는 안 된다. 일본 점령기 SCAP(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로서 맥아더는 일본의 천황이었다. 아니 천황을 죽이고 살렸으니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쇼군(將軍)이었다. 미국의 일본 통치는 완전히 맥아더의 독재였다. 같은 연합국인 소련은 일본 통치에서 배제되었으며 영국, 프랑스, 중국도 역할을 하지 못했고 미국의 국무성이나 국방성도 맥아더의 전권 통치에 간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맥아더가 히로히토를 저처럼 놓아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당시 미국 외교관, 국제정치학자, 법학자 등 전문가들의 대일본인식은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chrysanthemum and sword) 수준이었다. 가미가제에 놀란 미국은 천황을 위해서 죽겠다는 일본인들의 협박에 잔뜩 겁을 먹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인의 억제는 성공하였다. 천황제의 존속? 국체(國體)의 호지(護持)? 천황에 아무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근본원인이었다. 나치스를 단죄한 뉴른베르크 재판과 비교해도 히로히토를 그대로 놓아둔 것은 미국의 전후 처리가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로서 국정에 사실상 간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미국의 정치가, 관료, 전문가들이 일본의 정치구조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5.16에 대통령 윤보선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천황의 이름으로, 천황을 위해 죽은 수백만의 일본인들을 위해서라도 히로히토는 마땅히 자결했어야 했다. 연합국은 1차대전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터키처럼 천황제를 폐지하고 일본을 공화국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의 공산화를 겁낸 미국은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일본의 국수(國粹)와 타협했다.

일본의 전후 처리가 미흡한 것은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 독일과 일본 국민의 의식과 수준 차이도 있지만 모든 문제는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한 데에 귀결된다. 도쿄재판에서 처리된 극소수 외에 일본을 끌어가던 수많은 지도층이 히로히토의 고굉(股肱)에 숨어들었다. 심지어 만주사변을 만들어내고 이후 일본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몰아넣어 동양 3국에 말할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한 단초가 되는 이시하라 간지도 패전 당시 예비역이었다는 핑계로 살아남았다. 이것은 독일의 전후처리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의 비쉬 정권 처리와 비교해볼 때도 말이 되지 않는 처사다.

일본이 항복한지 불과 60여년, 총리라는 사람이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왔다는 증거는 없으며, 있다면 한국이 증거해보라”는 망언을 백주에 할만큼 일본의 국가 이성과 양심은 파탄났다. 독일뿐 아니고 유럽에서는 이런 의사와 행동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통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과 중국도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은혜를 원수로로 갚는 이들에게 이은보원(以恩報怨)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 히로히토는 전범으로 誅되어야 한다. 동양 3국의 평화와 안정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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