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만든 여연, 우예, 자성, 무창의 4군과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부령 6진이 우리 강역을 확정했다. 백두산은 1956년 북한과 중국이 협의했으나 경계가 확정되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만든 여연, 우예, 자성, 무창의 4군과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부령 6진이 우리 강역을 확정했다. 백두산은 1956년 북한과 중국이 협의했으나 경계가 확정되지 않았다.
발해는 중국 이전 중화민국에서 없어졌다. 중화민국 이전 청(淸)에서 없어졌다. 청 이전 명(明)에서도 없앴다. 고려 이후 조선에서 없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서 발해가 없어졌다. 김부식은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다. 국호를
발해는 고구려를 이었다. 고구려가 망한 다음에 나타난 국가로 우리 민족 최대의 국가이다. 발해왕이 황상(皇上)이라고 자칭한 것은 제국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발해는 상경 등 5경을 유지했는데
6.25전쟁은 북한 남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중공 입장에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은 1950년 10월 5일 시작되었다. 유엔군의 북진에 의한 북한의 항복 직전, 스탈린이 모택동에 지령을 내렸고 중공은 이 지령에 따른
자유당은 일제를 물려받았다. 구한말에서 물려받지 못하고 일제로부터 물려받았다. 일본은 급격한 근대화를 위해 국가 자원과 노력을 군과 사범학교에 집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포함하는 ‘고보’는 도에 하나를 만들었다.
김옥균 등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월탄 박종화의 소설 정도로 그려져 있다. 오히려 일본 개화파를 소재로 한 작품을 번역한 것은 많다. 일본 개화파는 거의 무혈로
2차대전 전 일본은 소련 독일과 더불어 3대 육군 국의 하나였다. 동시에 영국, 미국과 더불어 3대 해군 국의 하나였다. 육해군 둘 다 강군인 것은 일본뿐이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은 국가운영상 비상체제를 요구하였는데 의정부와 군부가 합쳐 설치된 것이 비변사備變司인데 줄여서 비국備局이라고도 한다. 비변사가 움직인 것이 조선의 실상이었다. 유성룡 등이 주로 토의한 곳이 비변사였다. 병자호란
학습에는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암기’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문을 가르치는 교수는 주자의 <태극도설>, <손자병법>의 주요 구절을 그대로 적었다. 옛날 공부하는 방법이 무조건 암기였다. 암기하면서 이해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는 세계적 유적이다. ‘앙코르’는 도읍,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니 ‘사원의 도읍’이란 뜻이다. 앙코르 와트는 1860년대 밀림 속에서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전에는 완전히
한국전차가 유럽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다음 몇 가지는 유럽 나라들이 따라오기 어렵다. 첫째는 최고의 성능이다. 2차대전 이래 명품 전차로 유명한 독일의 레오파르트 전차와 세계 최고의
이승만 대통령 시절 중화민국(대만)은 유력한 친한(親韓) 국가였다. 당시 중국(중화민국)대사관은 구한말 청의 원세개가 뺏은 명동 요지에 있었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중국이 들어오자 대만은 자리를 비워 줄
중국 국기는 오성홍기로 중국공산당, 농민, 민족자산계급, 소자산계급, 공산을 가리키지만, 내 생각으로는 민족구성인 한漢, 만滿, 몽蒙, 장臟, 회回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한족漢族 이외 이민족 통치를
중국의 민주화는 이제 시작이다. 외신에 의하면 50개 대학으로 소요가 확산되었다. 중국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 한국의 6.29 단계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뒤떨어진 4.19 단계일 수도 있다.
18세기 싸고 좋은 인도의 면직물이 영국에 대거 밀려들어왔다. 유럽에서는 그전까지는 의류는 주로 모직이었다. 영국에서는 면직물이 영국에 너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인도사람들이 목화를 따지 못하도록 농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