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와 석굴암

앙코르 와트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는 세계적 유적이다. ‘앙코르’는 도읍,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니 ‘사원의 도읍’이란 뜻이다. 앙코르 와트는 1860년대 밀림 속에서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전에는 완전히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 크메르제국의 사원으로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봉헌되었고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 쓰였다. 현재 크메르는 경제적으로 열악하다. 문화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캄보디아에 나가있는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에 의해 앙코르 와트는 더욱 빛이 나고 있다. 크메르가 개방되면서 세계 관광객들이 모이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태국 못지않을 것이다.

크메르 진출에 주의할 점은 한때 거대한 문화를 꽃 피운 캄보디아인의 자존심이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크메르 루즈가 문자를 아는 사람을 모두 죽인 학살은 너무도 큰 비극이었다.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을 떠올리게 하며, 공산당의 야만적 행태를 생각하게 한다.

동양 문화는 한자漢字 이외에 다른 문자로 쓰여진 것도 있다. 불경은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다. 이는 유럽 문화의 원전인 로마의 라틴어와 같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산스크리트어 문자를 참고했다는 설이 있다.

요遙를 세운 거란도 고유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베이징 자금성의 정문에 한자와 여진 문자가 같이 남아 있다. 유럽에는 영국과 프랑스 외에도 한때 제국을 건설했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거대한 궁전이 있다. 이를 보지 못하면 유럽의 문물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석굴암

숲속에 묻혀 잊혀진 석굴암도 1930년대 지나가던 우체부에 의해 발견됐다. 이를 찬미한 사학자 문일평의 뛰어난 글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문일평은 신채호나 박은식과 같이 문화에 바탕을 둔 역사학을 정립하였다.

석굴암이 없는 신라 유적을 생각할 수 있는가? 이것은 역설적으로 극심한 조선시대 불교 홀대를 증언한다. 초파일이 다가오는데 귀중한 불교문화에 관한 관심을 일으키는 운동이 널리 일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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