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 칼럼] 발해 제대로 알아야, 중국 동북공정 ‘극복’

발해 지도

 

발해는 고구려를 이었다. 고구려가 망한 다음에 나타난 국가로 우리 민족 최대의 국가이다. 발해왕이 황상(皇上)이라고 자칭한 것은 제국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발해는 상경 등 5경을 유지했는데 동쪽은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이르렀다.

발해와 일본 사이가 밀접하였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1980년대 들어 발견된다. 백제도 일본과도 연결되었다. 백제는 중국, 고구려,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왕국이었음이 밝혀진다. 당시 세계는 발해, 백제, 일본이 한 축이며, 신라와 당(唐)이 한 축이었다. 백제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중국에 도 영토를 가졌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발해가 멸망하자 고려는 고구려의 유민을 받아들였다. 조선에서 발해는 잊혀졌다. 정약용과 유득공 등 실학자들이 주목했을 뿐이다.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신라와 발해를 합쳐 남북국 시대로 불렀는데 획기적이다. 이는 우리 역사의 원전인 <삼국사기>를 넘어선다.

일본 강점기의 역사에서 발해는 잊혀졌으며, 이병도가 주도한 해방 후 역사에서도 발해는 살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박창암 등 상고사 연구자에 의해 연구되고 있을 뿐이다. 상고사를 찾는 것과 발해, 가야를 찾는 것은 우리 역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있어 같은 맥락이다.

북한에서 발해는 살려졌다. 만주와 연결된 북한은 상고사와 연관이 많았고 김두봉 등 저명한 국어학자가 북한에 간 이유도 컸다. 단군릉을 발굴하여 단군조선을 ‘신화가 아닌 역사’로 정립하였다. 신라와 발해를 합쳐 남북국 시대로 인식하는 관점은 통일에도 중요하다. 통일 과정에서 발해는 다시 살아나야 한다.

1970년대 이후 발견된 사료에 의해 새로 밝혀지는 史實이 많다. 백제사는 지금까지 묻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여로 수도가 이전하기 전 한성백제를 보여주는 자료가 1970년대에 비로소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1993년 발견된 금동대항로는 역사를 7세기 경 중국까지 포함한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하게 만들었다.

가야도 마찬가지다. 신라에 합병되기 전 가야가 고도의 철기문명을 발전시켰음이 밝혀지고 있다. 아라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는 철기문명의 이동이다. 발해는 완전히 새로 출발해야 하는데 일본, 북한에 조회하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소련 해체 후 엘친과 이루어졌던 전폭적 협조가 푸틴 시대에도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원 사료가 가장 중요하다. 史實이 事實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 국가적 노력이 중요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 4월 23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혼동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이 확고한 역사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만주를 다시 찾자는 것이 아니다. 영토를 찾는 것 앞서 역사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의 침략에 대항하는 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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