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

군사평론가; 육사 28기, 국방부 군비통제관, 국방부 정책기획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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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일본 메이지유신과 김옥균의 갑신정변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의 4원훈은 사카모토 료마, 요시다 쇼인, 시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말한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1830년생인데 1868년 메이지유신을 주도하고 바로 조선을 공략해서 1875년 조선과 수호조약을 맺었다. 1890년 유럽을 돌아보고 와서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다. 김옥균은 1851년생인데 메이지유신에 감동을 받았으며 1884년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일본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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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당선..”지구촌 첫 대선서 민주진영 승리”

    대만 선거에서 민주진보당 후보가 당선됐다. 민진당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만이 주권국가이며 방위력을 키워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연히 맞는 말이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중국인은 통일을 원한다는 것은 중국에게는 맞다. 그러나 대만(중화민국)은 독립한 자유민주 국가이며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은 공산 독재국가로 완전히 다른 나라다.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중국인일 뿐 대만인이 아니다. 194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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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국방장관, ‘독도는 전혀 문제없다’고 말해야

    국방부 발행 책자에 ‘독도는 분쟁지역’이라 하여 장관이 사과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지겠다고 한다. 이를 트집 잡는 것은 틀렸다. 오히려 ‘독도는 전혀 문제없다’고 해야 한다. ‘분쟁지역’이라고 언급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오해 내지 유도誘導되기 때문이다. 독도는 엄연하고 확고한 우리 영토다.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일본만이 문제를 제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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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훗날 역사의 승자는?”…44년 전 12.12 당시 정승화·전두환·최규하 그리고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0.26 당시 부마사태는 참혹했다. 계엄사령관 정승화 대장은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는 차지철 경호실장이 부마사태에 대한 극단의 조치를 망언하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흥분해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정승화 총장은 육본으로 복귀하여 김계원 비서실장에게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말을 듣고 헌병감 김진기 준장에게 김재규 체포를 지시한다. 헌병감은 김계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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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국군의날’과 ‘전쟁기념관’

    [아시아엔=김국헌 예비역 소장,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지난 주 건군 70주년 국군의날 행진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뿌듯함을 느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첨단 무기체계와 신세대 장병들의 발랄한 모습은 외국, 특히 사회주의권 군사행진과 비교된다.   북한 인민군의 행진은 오리발(goose step) 행군이다. 독일군에서 시작했고 소련군을 거쳐 중공군, 북한군으로 옮겨졌다. 멋있어 보이지만 장병들은 죽을 지경이다. 전체주의나 독재국가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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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다시 발해 역사를 생각한다

    세종대왕이 만든 여연, 우예, 자성, 무창의 4군과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부령 6진이 우리 강역을 확정했다. 백두산은 1956년 북한과 중국이 협의했으나 경계가 확정되지 않았다. 앞으로 중국과 장백산 유역을 확정해야 한다. 조선 말기에 일제가 두만강 이북의 간도를 넘겼는데 통일 후에 중국과 한다. 그런가 하면 백두산이 중국으로 표시된 지도가 기상청 지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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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발해사 연구, 러시아와 손잡는 것은?

    발해는 중국 이전 중화민국에서 없어졌다. 중화민국 이전 청(淸)에서 없어졌다. 청 이전 명(明)에서도 없앴다. 고려 이후 조선에서 없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서 발해가 없어졌다. 김부식은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다. 국호를 고구려를 이었다고 하여 고려라고 한 왕건과 달리 김부식이 나온 인종 이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관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발해의 국호는 진(振)이었다. 발해(渤海)는 당(唐)이 부른 호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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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발해 제대로 알아야, 중국 동북공정 ‘극복’

      발해는 고구려를 이었다. 고구려가 망한 다음에 나타난 국가로 우리 민족 최대의 국가이다. 발해왕이 황상(皇上)이라고 자칭한 것은 제국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발해는 상경 등 5경을 유지했는데 동쪽은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이르렀다. 발해와 일본 사이가 밀접하였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1980년대 들어 발견된다. 백제도 일본과도 연결되었다. 백제는 중국, 고구려,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왕국이었음이 밝혀진다. 당시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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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6.25전쟁은 북한 남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중공 입장에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은 1950년 10월 5일 시작되었다. 유엔군의 북진에 의한 북한의 항복 직전, 스탈린이 모택동에 지령을 내렸고 중공은 이 지령에 따른 것이다. 유엔이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이후 중공은 국제사회에서 추방되었다가 1991년에야 유엔에 가입, 세계에 겨우 복귀했다. 국군이 전력을 발휘한 3대 전투는 △백선엽과 1사단 장병의 다부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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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일본의 조선 교육···투자는 인색, 영향은 막대”

    자유당은 일제를 물려받았다. 구한말에서 물려받지 못하고 일제로부터 물려받았다. 일본은 급격한 근대화를 위해 국가 자원과 노력을 군과 사범학교에 집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포함하는 ‘고보’는 도에 하나를 만들었다. 해방 후 광주고보는 서중 일고가 되고 경북고보는 경북 중학교 경북고가 되었다. 얼마 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합해졌다. 일본의 고등학교는 프랑스의 에꼴 노르말을 본뜬 학교로 일본과 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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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경장 주역 김옥균을 다시 생각한다

    김옥균 등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월탄 박종화의 소설 정도로 그려져 있다. 오히려 일본 개화파를 소재로 한 작품을 번역한 것은 많다. 일본 개화파는 거의 무혈로 막부를 무너뜨렸다.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867년 순순히 막부를 넘겨 명치유신이 무혈로 이루어졌다. 요시노부가 무혈로 대정 봉환(大政奉還, 1867년 10월 14일 일본의 에도(江戶) 막부시대 말기 막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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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일본 육·해군이 세계 최강그룹인 까닭

    2차대전 전 일본은 소련 독일과 더불어 3대 육군 국의 하나였다. 동시에 영국, 미국과 더불어 3대 해군 국의 하나였다. 육해군 둘 다 강군인 것은 일본뿐이었다. 일본이 2차대전을 일으킨 자신감의 배경이다. 일본 육군은 대군은 아니었으나 정예군이었다. 계기가 된 것은 1938년의 노몬한 전투다. 일본군은 주코프의 기계화부대에 격멸되었다. 일본군 총검 돌격에 압도되던 중국군이나 상대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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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헌 칼럼] 고종의 갑오경장 ‘탄압’과 우크라 침공 푸틴의 ‘패착’

    임진왜란은 국가운영상 비상체제를 요구하였는데 의정부와 군부가 합쳐 설치된 것이 비변사備變司인데 줄여서 비국備局이라고도 한다. 비변사가 움직인 것이 조선의 실상이었다. 유성룡 등이 주로 토의한 곳이 비변사였다. 병자호란 당시 강홍립 항복의 시비를 가린 곳도 이곳이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발언은 하나하나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당시 엘리트의 실상을 알 수 있다. 비변사는 고종 때에 대원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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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우는 것보다 더 나은 공부법은 없다”

    학습에는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암기’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문을 가르치는 교수는 주자의 <태극도설>, <손자병법>의 주요 구절을 그대로 적었다. 옛날 공부하는 방법이 무조건 암기였다. 암기하면서 이해가 된다. 명문은 암기해야 한다. 영어로 말하면 미국 독립선언서다. 선비들 머리에는 명문장이 수없이 싸여 있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닦은 것이다. 보통 학생은 지력이 15, 16세경에 최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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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와 석굴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는 세계적 유적이다. ‘앙코르’는 도읍,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니 ‘사원의 도읍’이란 뜻이다. 앙코르 와트는 1860년대 밀림 속에서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전에는 완전히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 크메르제국의 사원으로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봉헌되었고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 쓰였다. 현재 크메르는 경제적으로 열악하다. 문화재에 신경을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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