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인터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도쿄에서 스시집을 개업해 1년 만에 미쉐린 별을 딴 한국인 청년의 얘기였다. 그는 대학의 외식 조리학과를 나오고 강남의 일식집에서 일하다가 도쿄로 갔다고 했다. 그는 쉐프가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봤는데 주인공 쇼타가 꿈을 위해 밤새워 연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열심히 했죠. 일본 스시집에서 일했는데 매일 제 돈으로 바다 장어를 사서 영업이 끝난 후에 혼자 몇시간씩 초밥 만드는 연습을 했어요. 바다장어로 초밥을 만드는 게 가장 어렵거든요. 초밥을 만드는 건 요리라기보다 수행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는 초밥 만들기에 전념하면서 혼자 살아온 것 같았다.
도쿄의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대학 선배가 이런 말을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일본에 살아보니까 작은 자기 일에 빠져서 사람들과 사귀기를 중단하는 사람을 봤어. 내가 본 한 사람은 휴가 때 만화만 몇 백권을 빌려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그것만 보는 거야. 그렇게 기계조립에 빠진 사람도 있고 종류별로 그런 매니아가 많아. 몇 날 며칠을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족속이지.”
자기가 몰입하는 일에 빠지다 보면 사람을 만나야 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닐까. 꼭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사회적인 네트워크의 형성이 일이고 힘이고 개인 재산인 경우도 있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다. 아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보면 사람들 하고 만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서 자기 일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 게임만 하는 친구도 있고 야구나 축구 경기만 보는 친구도 있어. 그렇게 하다가 대박이 터지면 천재란 소리를 듣는 거지. 그런 게 없으면 ‘찐따’가 되고 세상이 그래요.”
그 말을 들으니까 내가 아는 언론인이 했던 이런 얘기가 떠올랐다.
“유학을 갔다 온 내 조카가 있는데 좀 특이한 놈이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컴컴한 방에서 밤이고 낮이고 축구 경기만 보는 거야. 도대체 방에서 나오지를 않아. 한번은 보니까 머리도 목까지 길게 자라있고 수염도 더부룩해. 사람이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조카가 축구 평론가가 되어 있는거야. 세계적인 축구 경기를 다 섭렵하고 선수들의 개인적인 운동패턴까지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되어 있더라구. 여기 저기서 초청 받고 활동하고 있어.”
방에 혼자 죽치고 앉아 축구게임을 본 게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남의 겉모습이나 행동을 보고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삼성그룹의 회장 개인 비서를 오래 했던 친구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회장님은 회사에는 별로 나오지 않으셨어. 일주일에 한 두번 잠깐 사무실에 들리시고 집의 자기 방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분이지. 낮보다는 밤에 활동을 하시는 야행성이야. 내가 매일 밤 회장님 방으로 가서 명령을 받아 그룹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지. 그런데 회장님 방에는 세계의 다큐멘터리 테이프가 엄청나게 쌓여있어. 혼자 방에서 그걸 끝도 없이 보시는 거야. 완전히 매니아야. 회장님의 지식은 거기서 나오는 것 같았어.”
세상은 혼자 살아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감옥에서 독방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독방에 삼년만 두면 미쳐버린다는 연구논문도 있었다. 그런 독방을 선택해 수십년을 늠름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취향인 것 같다. 새도 참새는 모여 살아야 하고 독수리는 혼자 산다. 벌은 여러 마리가 함께 하지만 나비는 혼자 날아다닌다. 사람도 혼자 살아가는 족속이 있는 것 같다.
내 경우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빈 방에서 혼자 만화책을 읽었고 혼자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청년 시절 눈 덮인 산속의 암자의 뒷방에서 혼자 법서를 보았다. 군대에 가서도 전방 고지 위에 있는 브로크 막사 안에서 혼자 일하고 책을 보았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하면서 내 방에서 혼자 사십년 가까이 책을 보고 글을 썼다. 칠십 노인이 된 지금도 길다란 제방 위의 빨간 무인등대가 보이는 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돌이켜 보니까 나는 작은 일을 하면서 혼자 사는 족속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운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