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장교 동기 모임에서였다. 판사를 하다가 로펌의 대표변호사로 나온 친구가 같이 훈련을 받았던 한 사람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 친구는 참 특이해. 서울상대 재학 중에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다 붙어 버렸어. 법대를 간 고등학교 동기들이 아직 한 명도 붙지 못했을 때 말이야.”
하얀 피부를 가진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리도 우수하지만 미남이었다. 겸손하고 상냥했던 것으로 나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로펌대표인 친구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 삶의 행보가 특이해. 워낙 뛰어나서 뭔가 이루어 낼 것 같았어. 아니면 정계로 진출해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던가 말이야. 그런데 그게 아니야. 판검사도 하지 않고 변호사도 잠시 하다가 때려 쳤어. 철학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하면서 골방에 틀어 박혔어. 한번은 그가 쓴 책을 내게 보냈어. 피드백을 하려면 내가 읽어야 하잖아? 그런데 몇 장을 넘기지 못하겠는거야. 내가 차원이 낮아서 그런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는 거야. 내가 그 책을 다른 사람한테도 보여봤지. 모두들 도저히 못 읽겠다고 하더라구. 그 친구는 그 이후에도 세상에 나오지 않고 소식도 끊겼어. 약사인 부인이 벌어서 먹고 산다는 것 같아. 이제 우리가 모두 노인이 됐는데 그 친구도 이제는 세상에서 반짝거리기 틀린 거잖아? 대단한 인재였는데 말이야.”
그의 말 중에 ‘세상에서 반짝거리기’라는 단어가 내 귓가에서 맴돌았다. 우리가 가졌던 출세관이었다. 고시를 통과한 우리들은 모두 출세하고 싶었다. 같은 동기생이라고 해도 대법관이 되면 고개를 숙이고 다른 대우를 했다. 국회의원이 되어 금뱃지를 달고 반짝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실패라는 의식이 잠재해 있기도 했다. 상대적인 비교는 끝이 없었다. 경쟁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검사장을 지낸 한 선배는 이런 말을 했었다.
“30년 검사 생활을 돌이켜 보면 2년마다 입시를 치르는 것 같았어. 최고 권력의 눈치를 보기도 해야 하고”
법관 생활을 오래 한 선배가 있다. 그 사위가 검사장이었다. 그 선배가 사석에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위보고 검사장을 했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했어. 더 올라가려면 정권의 심부름을 철저히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장모인 집사람이나 딸은 그걸 모르지. 고지가 바로 앞인데 왜 그만두느냐는 거지. 그리고 내 후배 중에는 판사가 될 때부터 오직 대법관에 목표를 두고 그 이외에는 어떤데도 눈을 돌리지 않는 편협한 사람들도 있었어. 그런 사람들이 자기 출세길에 관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도 봤지.”
출세도 해 보고 하면서 세상을 달관한 선배의 말이었다.
사조직도 생리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재벌그룹 산하에서 회사의 사장을 했던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재벌그룹에서 출세를 하려고 내 영혼까지 판 것 같아. 오너가 까라면 까야 하는 거야. 되돌아보면 섬뜩한 것들이 많아. 오너의 명령으로 많은 위법행위를 했지. 오너는 그런 행위의 댓가가 내가 받는 급료에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는 거지. 사조직에서 출세를 하려면 오너의 삼심(三心)을 알아야 해. 그게 뭐냐 의심, 변심, 욕심이야. 아무리 정직하게 일해도 의심을 하지. 그리고 잘한다고 칭찬을 하다가도 어느날 가보라는 거야. 변심이지. 그럴 때 ‘예’라고 하면서 복종해야 해. 왜냐? 오너시니까. 그리고 오너는 재산을 더 가지고 싶어 하고 욕심이 끝이 없어. 내가 오너 3대를 모셨지.”
대기업 사장이었던 그의 어조는 어두운 느낌이었다.
지나놓고 보면 이 세상은 하나의 연극무대였던 것 같다. 주연도 있고 단역이나 엑스트라역도 있다. 무대 위에 오르지 않고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다 간 경우도 있다.
하나님도 세상 무대에 내려와서는 진리를 말하고 다니는 가난한 목수 역할이었다. 세상에서의 껍데기 반짝거림을 거부하고 골방에 앉아 철학을 한 동기생이야 말로 세상을 비추는 작은 빛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