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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현지기고] 내 집이 전장으로…최전선 나선 이란 기자들 “우린 도망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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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알리레자 바라미 이란 ‘아스레 로우샨’ 편집장] 이란 언론인들이 최초로 경험한 전쟁은 1981~1989년 벌어진 이라크와의 전쟁이었다. 당시에는 언론 매체와 통신이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후 일부 기자들이 국제 통신사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이나 레바논 등지의 전쟁을 취재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작년 6월,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기점으로 이란 언론인들의 업무 환경이 180도 달라졌다. 테헤란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은 유사 시 즉시 현장으로 달려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당국은 추가적인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미사일, 폭탄, 드론이 난무하는 현장에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이란의 기자들은 개인의 안전보다 직업적 소명을 따르고 있다.

이란 엔사프 뉴스의 모스타파 에슬라미파르 기자

구조활동 중 파편 맞은 모스타파

모스타파 에슬라미파르는 ‘엔사프 뉴스’의 분쟁 담당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필자는 2025년 6월 이란과 이스라엘의 12일 전쟁을 보도하면서 창문이 깨진 그의 사무실 사진을 공유한 적도 있다.

며칠 전 그는 테헤란 주거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그는 취재에 앞서 부상자 구조에 나섰다. 그러나 몇 분 뒤 두 번째 공격이 발생했고, 그 파편이 모스타파의 얼굴과 눈을 강타했다.

모스타파는 “병원에서 즉시 치료를 받았다. 내가 기자라는 사실 덕분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받은 듯하다”며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다. 끔찍하게 희생된 시민들에 비하면 내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란 ISNA 통신사 부근의 사고 현장

무차별 폭격, ISNA는 빗겨갔지만…

나는 2000년부터 20년 이상을 ISNA 통신에서 일하며 여러 일들을 겪었다. 전쟁 첫날, 첫 공격 지점은 ISNA 건물에서 불과 700m 떨어진 곳이었다. 마치 우리 집이 공격당한 듯한 슬픈 감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란 국영 TV 건물이 폭격 당한 이래 언론사는 잠재적 공격목표 중 하나가 됐다. 이후 각 언론사는 재량에 따라 사무실 출입 여부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이스라엘 군이 테헤란 중심부 공격을 예고하며 작전 지도를 공개했는데 그 범위 안에는 ISNA 건물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전 직원은 물론 경비원들까지 황급히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몇 분 후, 이스라엘이 인근의 경찰서를 폭격했다. ISNA에서 200m도 채 되지 않는 곳이었다. 다시 수 시간 후, ISNA 건물 근처로 향했다. 거리 곳곳에서 핏자국이 보였다. 한 행인이 머리에 파편을 맞아 사망한 것이다. 이웃들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과 함께 길을 걷다 봉변을 당했다. 그녀가 숨진 순간 남편은 바닥에 주저 앉아 그녀를 끌어안고 통곡했다고 한다. 다음날 주민들은 그 자리에 꽃을 놓고 작은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의 집들이 전장으로 변해버렸다. 집, 직장, 거리까지 삶의 터전 곳곳에 전쟁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비록 민간인 신분이지만 이란의 기자들은 소방관과 구조대원들처럼 전쟁의 한가운데로 파고든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아시아엔 영어판: War Journalism at Home! – THE A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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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레자 바라미

이란 'Asre Rowshan' 편집인, 이란 ISNA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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