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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의 시선] 시골 도시의 다정한 옛 풍경
바닷가 작은 음식점 늙은 개의 눈빛에서는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60대 주인 부부를 측은해 하고 사랑하는 그윽한 눈길이라고 할까. 주인 부부와 같이 출근했다가 같이 돌아간다. 단골손님인 내가 가면 뚱뚱한 몸으로 뒤뚱거리며 다가와 옆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조용히 엎드려 있다. 마치 주인 대신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주인 부부는 개의 수명이 얼마 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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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 칼럼] “성경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윤 대통령 영혼 다시 태어났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서 나온 게 뉴스가 된 적이 있다. 주변에 그를 움직이는 무속인들이 존재한다는 말이 돌았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어떤 영적인 것에 운명을 의지하고 싶어 하는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다. 회사를 경영하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 할 때마다 나는 굿을 해.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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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의 시선] 남은 삶이 10년이라면 무얼 하시겠습니까?
필자 엄상익 변호사 내 나이 예순세살 때였다. 내가 가입했던 보험회사 직원이 연락해 왔다. 연금 타는 기간을 십년으로 할 것인지 종신으로 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다. 복잡한 설명이 덧붙여졌지만 오래 살아야 이익이 있고 빨리 죽으면 손해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십년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왠지 자신이 없었다. 서가에 꽂혀있는 소송실무서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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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의 시선] 사랑도, 진실도 눈으로 말해요
눈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것인가. “이 녀석이 요새 나 모르게 돈을 쓰고 있네, 혹시 아빠가 돈 줬어?”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인 손자에게 몰래 용돈을 줬느냐고 묻는 것이다. 애를 버리니까 주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다. “아빠, 내 눈 똑바로 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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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의 시선] ‘천재성’은 ‘고독’ 속에서 쑥쑥 자라난다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도쿄에서 스시집을 개업해 1년 만에 미쉐린 별을 딴 한국인 청년의 얘기였다. 그는 대학의 외식 조리학과를 나오고 강남의 일식집에서 일하다가 도쿄로 갔다고 했다. 그는 쉐프가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봤는데 주인공 쇼타가 꿈을 위해 밤새워 연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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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 칼럼] 엄씨종친회 부회장 엄기영 사장님께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 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 출신 엄기영 사장님은 지금 엄씨 문중 전체의 정신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누구보다 세상을 넓게 그리고 깊이 보아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이따금씩 우편으로 오는 종친회의 책자를 보았습니다. 책자를 펼쳐보다가 사진을 보면서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든 적이 있습니다. 시제를 지내는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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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 칼럼] 어떤 오너 사장의 ‘삼심’···의심·변심·욕심
조지 오웰 표지 법무장교 동기 모임에서였다. 판사를 하다가 로펌의 대표변호사로 나온 친구가 같이 훈련을 받았던 한 사람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 친구는 참 특이해. 서울상대 재학 중에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다 붙어 버렸어. 법대를 간 고등학교 동기들이 아직 한 명도 붙지 못했을 때 말이야.” 하얀 피부를 가진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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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의 시선] 길고 긴 노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아버지는 오십대 중반에 정년퇴직을 했었다. 삼십년 동안 다니던 회사였다. 퇴직한 다음 날 아버지는 공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출근 시간에 이렇게 집에 있으니까 이상하다.” 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는 불안한 모습이었다. 수십년 다니면서 아버지는 조직의 부품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퇴직한 후에 읽겠다고 평생 애지중지하던 문학전집들도 아버지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공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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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의 시선] 반세기 전 참선배들의 참충고 덕분에…
내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줄 때 그들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이었다. 나는 그 두 명에게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법을 배웠다. 말 한마디를 해도 그 의미가 있을 때까지 속에서 말이 여물게 기다렸다. 그리고 짧게 한마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깊이와 무게를 얻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본문에서 대학 2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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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의 시선] 당신은 어떤 묘비명을 남기고 싶은가?
카잔차키스의 묘비. 거기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고 써있다. 산과 들을 다니다 보면 오래된 무덤들이 즐비하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돌보지 않은 어떤 무덤은 그 앞에 있던 비석이 기울어져 땅에 묻혀가기도 했다. 이끼 낀 그 비석에는 무덤 주인의 조선시대 벼슬이 강조되어 새겨져 있다. 내가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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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노년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과 받아들임 아닐까?
노년은 가난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것 같다. 서울 법대를 나오고 미국 유학을 하고 박사를 한 친구가 주차관리원을 하다가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 법대를 나오고 평생을 고시 낭인으로 지내면서 지하철 행상을 하는 사람의 가난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70대인 나는 또래의 가난을 너무 흔하게 본다. 인생은 ‘생노병사’의 고해라고 하는데 수명이 연장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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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의 시선] 조상 중에 내시가 있다면…
엄홍도 정려각. 강원도 영월에 있다. 나의 블로그에 댓글이 하나 왔다. 당신의 조상 모습이 <왕과 비>라는 역사드라마에 있으니 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거의 30년 전의 작품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초반에 ‘엄 자치’라는 내시가 등장한다. 왕이 요 위에 엎드려 있고 내시 엄 자치가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왕이 내시에게 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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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의 시선] “어지러운 세상…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중고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동네 친구 세 명이 있었다.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죽고 못 살았다. 그런데 우리 네 명의 구성이 묘했다. 두 명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리고 두 명은 가난한 집이었다고 할까. 부잣집 중 한 집은 아버지가 섬유로 부자가 된 사업가였고 다른 한 집은 아버지가 공대학장이고 특수기술을 발명해서 기업들의 대접을 받았다. 부잣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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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의 촌철] 인간의 ‘심미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변호사를 하면서 만났던 한 화가를 돌이켜 본다. 그는 평생 계곡과 인물만을 그렸다. 그가 그린 계곡 그림을 잠시 빌려서 사무실 벽에 걸어놓은 적이 있다.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 영혼이 바위 아래 고여있는 어두운 계곡물 위에서 떠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림속에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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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 칼럼] 권력에 유착하는 저질 판사 어떻게…
윤준 고등법원장의 퇴임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그는 사법부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의 임명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가 이런 말도 했다. “일부 국민은 폭도가 법원으로 쳐들어갔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을 겁니다.” 그는 사법부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것 같았다. 내가 30대 중반 잠시 정보기관에서 일을 할 때였다.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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