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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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이념 과잉’, ‘프레임 난무’ 시대에 살면서…

    나와 친했던 고등학교 선배가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기자 시험에 합격하고 사병으로 군대를 갔다. 그는 우연히 보안사령부로 차출되어 노태우 대위의 밑에서 몇 명의 다른 사병과 함께 일을 했었다고 했다. 그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시 노태우 대위는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라는 말이 자동 녹음같이 흘러나왔어. 한번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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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나

    방송의 토론 장면이 나오고 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제목 아래서 평론가 김갑수씨가 교회의 타락과 정치 목사의 부패를 질타하고 있다. 그 앞의 성직자들이 시원한 항변이나 변명을 못하고 있다. 그저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정도의 궁색한 답변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프로를 보면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됐을까?’를 생각해 봤다. 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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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닷새 후 광복절 79돌….한번 같이 생각해 봅시다”

    1920년대 중반경이다. 경북 영덕의 경찰서장 관사에 매일 아침이면 팔뚝만한 삼치 한 마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일본인 경찰서장은 누가 삼치를 자기 집에 던지고 가는지 살펴보았다. 삼치 상자를 지게에 지고 다니는 20대 중반쯤의 꾀죄죄한 모습의 남자였다. “왜 아침마다 우리 집에 생선을 놓고 갑니까?” 경찰서장이 물었다. 생선 장사가 황송한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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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1940년 부산 ‘노다이 사건’을 아시나요?

    1940년 초 일본군 육군 대좌 노다이가 부산 제2상업학교에 부임해 왔다. 조선인 지원병제도가 성공하자 일제는 다음 단계로 각급학교에 현역 장교를 파견해 군사교육을 시행해 보기로 했다. 징병제를 앞둔 실험적 조치였다. 노다이 대좌는 인격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가 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류인 부산중학교에 다니는 일본아이들을 보면 눈동자가 살아있는데 너희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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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일본군에 지원한 조선 청년들

    1939년 발행된 일본 시사잡지 <모던 일본>을 본 적이 있다. 경성에서 일본 군인이 되겠다고 지원한 조선인이 12,300명이고 그중에서 600명을 뽑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해 전인 1938년에 조선인들에게 일본 육군에 지원할 수 있다고 처음으로 발표했는데 3000명이 신청하고 그중 400명을 선발했다고 했다. 일본군이 되기를 지망하는 조선인이 넘쳐나고 있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마쓰이 이와네 대장 휘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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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한글 창제 반대한 게 일본놈”이라는 손자의 이상한 답안

    딸이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동해에 있는 나의 집으로 왔다. “아빠 요새 쓰는 일제시대 역사에 관한 글 재미있어. 계속 써봐요.” 딸은 토론토대학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그리고 뒤늦게 서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대화중에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초등학교에 다니는 태윤이 역사문제 중에 세종의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게 누구였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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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일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삶

    그리고…외국인이 탄복하게 된 나라 대한민국 8월의 하얀 태양이 세상을 원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파란 바다 위에 몇 척의 화물선이 풍경화처럼 고요하게 떠 있고 하얀 구름이 수평선에서 피어오른다. 노란 모래사장으로 눈부신 하얀 파도가 조용히 밀려오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파라솔 아래서 해수욕을 온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고 있다. 러시아에서 일을 찾아온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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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천대받던 기층민에게 조선 정부는 무엇이었나?”

    변호사로 민족종교 단체의 소송을 대리하다가 문득 호기심이 일어 그 종교의 경전을 읽게 됐다. 경전 속에 있는 구한말의 애잔한 장면 하나가 가슴에 깊게 스며들었다. 시냇물가에 먹지 못해 기진맥진한 아버지가 누워있고 그 옆에 어린 딸이 있었다. 어린 딸이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아버지 입에 넣어주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입에서 작은 물고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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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그 시절 베스트셀러 김동인의 ‘젊은 그들’

    1930년대 전반 <동아일보>에 연재되는 글이 조선인들의 피를 들끓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영혼 안에서 잊혀져 가는 조선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왔다간 조선의 메시아 대원군이 사람들에게 준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대략의 내용은 이랬다. “조선말 소수 선각자들의 자식들로 조직된 비밀단체가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합숙을 하는 사설교육기관으로 위장을 했다. 지도자와 조직원은 선생과 제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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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일본함대가 캘리포니아를 점령했다”

    “미국 시장이 우리의 젖줄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중국과도 경제적으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것 아닐까?”   일본함대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군항 샌디에이고를 향하고 있었다. 일본함대는 단번에 샌디에이고를 파괴해 버렸다. 필리핀이나 괌, 하와이 등 태평양 상의 주요지역은 이미 일장기가 휘날리고 미국의 태평양함대가 궤멸 됐다. 일본군을 실은 대함대와 운송선이 미국 본토 근처에 와서 종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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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1930년대 창경원 벚꽃놀이와 재벌과 공산당

    1934년 4월 18일 저녁 경성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벚꽃놀이를 가기 위해 돈화문에서 창경원에 이르는 거리는 인파로 뒤덮였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이었다. 전국적으로 벚꽃놀이가 유행이었다. 경성사람들은 물론 전국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올라와 전차를 타고 창경원으로 갔다. 종로 사정목에서 원남동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거리를 밝힌 1만개가 넘는 오색영롱한 전등불이 축제의 분위기를 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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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박흥식…종이장사에서 화신백화점 설립까지

    변호사를 하면서 부자들을 많이 봤다. 대통령이나 장관 그 친척들이 땅이나 건물을 몰래 사들이기도 했다. 땅값이 폭등하고 그들은 시세차익으로 대대손손 부자가 됐다. 겉으로는 나라를 위하고 뒤로는 자기를 위하는 경우를 목격했다. 권력에 줄을 댄 그런 부자들이 있다. 건실한 기업가 부자도 봤다. 중고등학교 동기 중 하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사원으로 출발했다. 얼마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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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친일논쟁16] 경성방직에 거액 대출해준 아루가 식산은행장

    변호사의 일을 하다가 우연히 일제시대의 경성방직이라는 회사와 마주쳤다. 경주의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과 고창갑부 김성수 집안이 합작회사 ‘조선인 주식회사 설립운동’을 일으켜 만든 회사다. 물론 조선인 유지들과 일반국민의 공모가 중심이었다. 경영은 일본의 대학에서 경제와 경영을 공부한 신세대가 맡고 역시 일본에서 초첨단의 산업기술인 방직기술을 배운 신세대가 생산을 맡았다. 경성방직은 조선인만을 고용했고 조선 기술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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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경기중학, 정독도서관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나는 이따금 화동에 있는 정독도서관을 찾아간다. 내가 다니던 경기중학교 건물이 도서관으로 바뀐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곳 벤치에 앉아 있으면 아스라한 기억 저편의 한 광경이 떠오른다. 입시 시험장에서 걸어 나오는 나를 향해 때 묻은 하얀 광목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제일 앞에 달려온다.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학부모들은 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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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친일논쟁⑮] 만주의 조선 재벌 ‘경성방직’과 김연수

    1930년대 전반 경성방직은 봉천에 대표사무소를 개설했다. 경성방직은 조선의 명문가로 알려진 경주 최부자와 고창 갑부 김성수 집안이 주동이 되어 조선인주식회사설립 운동을 일으켜 만든 회사였다. 경성방직은 대련과 봉천에서 열린 산업견본시장에 참여해 직물 제조공정을 시연해 보였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애드벌룬을 공중에 띄우면서 직물을 선전했다. 경성방직은 이미 만주 지역 직물수요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경성방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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