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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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정운천 “광우병사태는 거짓 선동방송…장관이 닭보다 못해요”

    광우병 사태는 허무맹랑했다. 거짓 선동방송이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대통령이 붉은 촛불의 바다를 보고 겁을 먹고 청와대 뒷산으로 도망했다. 도대체 이게 뭐지? 하고 의혹이 일었다. 나는 당시 정부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방송의 거짓을 밝혀 달라는 정부측 고소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되살려 그 과정을 작은 조각 기록으로 남겨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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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입 틀어막으려는 세력들

    오늘자 <조선일보>에 난 작은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역사교과서 집필자가 고통을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그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자로서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교과서 내용을 썼다고 했다. 일부 좌파 언론이 그런 자신을 친일파이고 뉴라이트라고 분류하면서 악마화한다는 사연이다. 나는 2000년대 초반 친일파를 다시 색출하려고 만들어진 위원회와 싸운 적이 있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김동인의 죽은 영혼을 대리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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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죽음학자 최준식 교수에 묻다 “사후 세계 있습니까?”

    나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더 궁금해진다. 나의 영이 이 세상으로 여행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면 마음이 편하고 푸근해 질 것 같다. 그러다가도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라고 하면 허망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하기야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고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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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대통령 부부의 돈 쓰는 법

    50년만에 육영수 여사가 사용했던 특수활동비 내역이 언론에 밝혀졌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 부인인 육 여사에게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편지가 갔다. 육영수 여사는 저녁마다 그 편지를 직접 다 읽고 마음이 쓰이는 대로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쌀 한 가마니 보내주기도 하고 단칸방에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공무원에게 방을 하나 더 얻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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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먼저 죽은 사람들은 나의 훌륭한 스승이었다”

    어느날 아침 기도를 하는 데 난데없이 두 죽음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첫 장면은 글을 쓰다가 책상에 머리를 대고 조용히 죽은 장면이었다. 그가 쓴 원고들이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삶의 에너지를 마지막까지 다 쓰고 죽은 것 같았다. 두 번째 장면은 일을 하다 잠시 쉬는 사이 그 영혼이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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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현충원 안의 부끄러운 귀신들

    소설가 정을병씨가 살아 있을 때 친했었다. 그는 소설은 몸으로 써야 한다는 문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그는 국토건설단에 직접 들어가 체험을 하고 <개새끼들>이라는 소설을 써서 강제노동을 폭로했다. 그 댓가로 문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했다. 세월이 흘러 그가 노인이 된 어느 날 국가에서 증명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민주화운동에 공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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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황석영의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 ‘비유법’

    황석영 작가가 방송에 나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그냥 쉽게 말할 수 있어요. 우리 집에 도둑놈이 들어왔는데 이 자가 담에다 사다리를 걸쳐놓고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간 다음 사다리를 두고 간 거야. 그게 식민지 근대화론이지. 이런 명쾌한 걸 가지고 무슨 이데올로기화가 필요해?” 나 역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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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이종찬과 안병직 두 원로의 역할은 과연 뭘까?

    2007년경 나는 일제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김동인과 조선인 사업가 김연수에 대한 친일 소송의 변론을 맡았었다. 그들이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나 여부를 판단하는 법정이었다. 나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그 시대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사회원로로 존경받는 두 분이 일제시대와 건국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한 분은 독립운동가 집안인 이종찬 의원이고 다른 한 분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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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전공의 사태를 보는 시각…”의사들 자존감은 소명의식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했고, 당대표였던 김종인씨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는데 응급실 스물 두 군데에 연락해도 치료해 주겠다는 데가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반 국민은 다치면 그냥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의사들의 사실상 파업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젊은 환자의 팔다리가 터져나갔다. 그 환자는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다고 한다. 의료대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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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친일논쟁17] 사회주의자 인정식 등 우리가 숨긴 민족의 변질

    1930년대가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조선총독미나미의 책상 위에 서류 하나 놓여 있었다. 양면 괘지에 단정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와래라와 고고쿠 신민나리 주세이 못데 궁고쿠니’(우리는 황국의 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한다) 김대우라는 조선인이 만든 ‘황국신민의 서사’였다. 일본과 조선이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조선인들이 아침저녁으로 그 문장을 외우게 하자는 것이었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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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슬픈 이면’…”아버지가 찢겨 죽었어요”

    나의 집안은 일제시대 만주의 훈춘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어머니의 집안은 용정에서 살았다. 용정에 살던 부모세대인 한 노인은 자기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일본군의 총검에 찢겨 죽고 마을이 불타는 걸 봤다고 내게 말했다. 내 어린 시절, 고모는 만주에 살던 때의 얘기들을 이따금씩 했다. 긴 가죽 장화를 신은 군인이 들어와 발길질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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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반민특위 서순영 재판장…’시대의 닻’ 역할을 한 판사

    나는 해방 후 혼란기의 판결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해방 후 거리에는 “친일 지주 자본가 김연수를 처형하자”라는 벽보가 붙었다. 조선인 재벌 1호였던 그는 일제에서 중추원 참의 등의 직책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친일파 척결의 거센 시대 조류에서 그는 엉뚱하게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벌이 받는 재판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재판의 공정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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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7년 감방생활 후 그는 이렇게 변해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그가 바닷가에 사는 나를 찾아왔다. 7년의 감옥살이를 하고 70 고개를 넘은 그 역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주위에서는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가라앉은 듯한 적막감 같은 게 떠돈다고 할까. 나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활기차게 사업을 하던 그는 30대 말에 부도를 맞이했다. 그는 해외로 도피해 20여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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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내면 깊은 곳 나의 영 속에 있는 ‘그 분’

    서울 집에 일이 있어 잠시 왔더니 우편함에 편지 한 장이 꽂혀 있었다. 이상했다. 편지의 표면에 동까지만 주소가 적혀 있었고 한자로 쓴 내 이름도 글자가 틀렸다. 그런데도 편지가 제대로 나를 찾아 온 것이다. 발신지를 보니까 감옥 안에서 쓴 것 같았다. 뜯어서 내용을 보기 시작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자신을 사형수라고 했다.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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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누가 밀정 같은 친일파일까

    정부와 별도로 개최된 광복회의 기념식 광경을 봤다. 구한말 의병의 손자라는 분의 연설이 있었다. 울분에 찬 그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도 이 사회에는 친일파가 많이 잔존해 있는 것 같다. 그 친일파가 대통령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고 했다. 청중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 타도라는 구호 소리도 들렸다. 누가 친일파일까 그 기준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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