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엄상익의 시선] 반세기 전 참선배들의 참충고 덕분에…

내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줄 때 그들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이었다. 나는 그 두 명에게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법을 배웠다. 말 한마디를 해도 그 의미가 있을 때까지 속에서 말이 여물게 기다렸다. 그리고 짧게 한마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깊이와 무게를 얻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본문에서

대학 2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매일 학교 도서관으로 갔었다. 가방만 도서관에 두고는 친구들과 모여 낄낄거리고 얕은 얘기를 끝도 없이 지껄이다가 해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나는 말이 많았다. 과장도 많았고 허풍이 섞여 있었다. 헛소리를 하다 돌아서면 입맛이 쓰고 나 자신이 싫어지기도 했다. 나는 깃털같이 가벼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가는 연일 시위가 심했다. 스크럼을 짠 시위대가 교문을 나가려고 할 때면 하늘에서 우박같이 최루탄이 날아오기도 했다.

고인물 같이 조용한 도서관에서 나는 두 명의 특이한 인물을 봤다. 그들은 바위같이 묵직하게 자리에 앉아서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았다. 남과 대화하는 걸 보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얘기를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공부만 할 수 있을까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두 사람에게서는 이기주의가 내뿜는 차갑고 매끄러운 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느낌이었다. 어느 날 그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잠시 대화를 나누자고 했다. 나는 그를 따라서 도서관 앞 복도의 한적한 곳으로 나갔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학교는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대부분이 정치현실을 욕하면서 들떠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묵묵히 공부하는 길을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그와 격의 없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눈빛이었다. 나를 관찰하다가 신중하게 해 주는 말이었다. 그의 짧은 말에 깊이와 의미가 있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쨍쨍한 햇볕이 내려쬐는 가운데 청명한 바람이 부는 그해 가을 어느 날이었다. 도서관의 한구석에 항상 정물같이 앉아서 공부하는 한 학년 위의 다른 선배가 있었다. 하얀 얼굴에 검은 눈썹을 가진 귀공자 같이 생긴 그는 주위사람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가 나를 조용히 도서관 밖으로 불러냈다.

“우리 학교는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에 전념하는 게 어떨까요.”

나는 그의 안타까워 하는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다. 그는 내게서 아쉬운 실패의 예감을 느낀 것 같았다. 친하지도 않은데 와서 깊은 말을 해주는 그에게서 어떤 숙연함을 느꼈다고 할까. 그의 말을 고마움으로 받아들였다.

내게 진지한 충고를 해 주었던 두 사람은 사법고시에 무난히 합격했다. 한 사람은 사법연수원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하고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한 사람은 이름난 대형로펌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흘렀다. 내가 변호사가 되어 우연히 한 이혼 법정 앞에서 기다릴 때였다.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안에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판사가 헤어지는 부부 사이의 재산을 분할해 주고 있었다. 남자의 화난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 좋으라고 내가 양보합니까? 냉장고도 접시도 줄 수 없어요. 가져다 버릴망정 그럴 수는 없어요.”

사랑하고 희생하겠다고 약속한 부부들이 헤어질 때는 그렇게 바늘 끝 하나 세울 틈 없이 좁은 경우가 많았다. 헤어지는 배우자가 재혼할 상대에 대한 질투와 시기도 심했다.

듣고 있던 판사가 점잖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 정 그러시다면 냉장고도 톱으로 잘라 반씩 나누어 가지고 접시도 깨서 반씩 가져가도록 하시는 게 어떨까. 장이고 뭐고 모든 걸 공평하게 반씩 자르시지”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픽 웃었다. 내게 공부하라고 충고하던 그 대학선배의 목소리였다. 이기적인 부부에 대한 그의 일침이라고 할까. 그는 솔로몬 같은 판관이 되어 있었다. 다만 아이를 반씩 가져가라고 하지는 않았다.

내게 충고를 해 주던 또 다른 대학 선배는 천명 가까운 변호사를 지휘하는 대형 로펌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이기주의적이고 말이 많은 변호사들이 그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내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줄 때 그들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이었다. 나는 그 두 명에게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법을 배웠다. 말 한마디를 해도 그 의미가 있을 때까지 속에서 말이 여물게 기다렸다. 그리고 짧게 한마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깊이와 무게를 얻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그 후로 나는 말을 줄여나갔다. 속에서 무르익어 의미가 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 아니라면 가급적 피했다. 어딘가에서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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