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다시 갈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의성의 고운사가 이번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참동안 망연히 앉아 있었다. 절로 들어가는 숲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아침 햇살에 빛나는 가운루에서 바라보는 절 풍경이 눈에 선한데, 이제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니.

경상도의 큰 절인 봉정사와 부석사를 말사로 거느린 고운사에 찾아가 스님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이 절에 스님이 몇 분 계시나요.“
”본사인 이 절은 열 분이 계시고, 부석사 봉정사는 한 예닐곱 분쯤이 있지요.“
나도 그럴진대 나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스님이나 고운사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 같은데, 지금도 바람은 무심히 무심히 불고…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 자락에는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부석사, 봉정사를 말사로 거느린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가 있다. 681년(신문왕 1) 의상이 이 절을 창건할 당시에는 고운사高雲寺라 했는데, 최치원이 이곳에 와서 여지와 여사 두 승려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지었다. 그 뒤 절을 지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최치원의 호를 따라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절 입구에 수많은 여관들이 있었다는데, 비행기의 폭격으로 불타버렸다. 불교 종단의 세력 다툼으로 황폐화되었던 이 절이 제 모습을 찾은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가을밤에 오직 괴로이 읊나니
세상에 날 알아주는 이 적구나.
창밖 깊은 밤비는 내리는데,
등불 앞 마음은 만 리를 달리네.“ 최치원

현전하는 최치원의 시 120여 수 중 그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추야우중秋夜雨中〉이 남아 있는 이 절은 948년(고려 정종 3년) 운주가 중창하였다. 1018년(현종 9년)에는 천우가 대웅전, 약사전, 극락전, 적묵당, 설선당 등을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승려가 중창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의 보급창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1835년(조선 헌종 원년) 화재로 소실되자 만 송, 호암, 수열 등이 함께 재건하였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재건과 중수가 계속되었는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을 비롯한 스물 몇 채의 건물이 있다.
가운루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석불좌상은 보물 제246호로, 3층석탑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신정일의 <신택리지> 경상도 편)에서
고운사와 아름다운 폭포 위에 날아갈 듯 세워져 있던 내 마음의 정자 만휴정까지 소실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미어지는 이 아침,
”우는 소리 애끓이니 산대나무 찢어지고,
통곡하여 흘린 피로 들꽃이 붉더라.”-고려 문인 정지상의 ‘영두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