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신정일의 시선] 내면을 보는 눈, 외면을 보는 눈

살아온 대로, 내 의지대로 남은 생애 살다가 보면 얼마나 많은 기이한 일이 일어날까?, 그래서 가끔씩 ‘허허’ 하고 혼자 웃을 수 있는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2025년 3월 25일 온갖 꽃 피어나는 봄날이다. <사진 신정일>

10여 년 전 일이다. 서울 KBS에 방송 녹화차 갔다. 3년여를 두고 한 달에 한 번씩 가기 때문에 방송 시간이 정해져 있다. 오전 11시에서 12시까지 15분 짜리 네 편의 방송을 한 시간 동안 녹화를 한다.


다른 날이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복장(배낭 하나 메고, 트레킹 화 신고)을 하고서 본관의 출입처에 들어가 주민등록증을 내밀자, 안내하는 아가씨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공사하러 오셨어요.”

아하! 내 차림새가 공사를 하러 온 인부의 차림새로구나. 그것도 강원도 망상에서 강릉의 초입 정동진과 경포대 해수욕장을 거닐 때 모자를 안 써서 얼굴이 너무 새카맣고, 하지만 나는 엄연히 방송에 출연하러 온 사람인데…
“아닙니다. 방송 출연하러 왔습니다”고 말하자 컴퓨터로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출입할 수 있는 명패를 주는 것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사람들을 평가할 때 눈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므로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나는 간첩으로 오인을 받아서 경찰서에도 끌려갔고,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항상 피해 아닌 피해를 입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부를 보는 눈(外眼)이요, 다른 하나는 내부를 보는 눈(內眼)이다. 외부를 보는 눈으로는 외부의 사물을 살피고, 내부를 보는 눈으로는 이치를 살핀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고 간에 이치가 없는 것이 없고, 외부를 보는 눈에 현혹된 자는 반드시 내부를 보는 눈에 의하여 바로잡혀야 하므로, 눈의 기능은 온전하게 내부를 보는 눈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외부를 보는 눈이 도리어 내부를 보는 눈에 해를 끼친다. 옛날 사람이 ‘장님이던 처음 상태로 나를 돌려다오’ 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이용휴의 글이다.

연암 박지원은 일찍이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비추어 보라”고 말했고, 순자는 ““마음(心)으로 도(道)를 안다. ”고 하였다.
주자도 “견문이 넓은 사람은 안목眼目이 넓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떠돌았는데도 한 치 사람의 마음 속 길을 알지는 못한다.

어쩌겠는가? 이제껏 살아온 대로 살아야지, 삶의 형태, 즉 외모를 가꾸거나 말투를 바꾸어 가면서 고상한(?)체 산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살아온 대로, 내 의지대로 남은 생애 살다가 보면 얼마나 많은 기이한 일이 일어날까?, 그래서 가끔씩 ‘허허’ 하고 혼자 웃을 수 있는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2025년 3월 25일 온갖 꽃 피어나는 봄날이다.

신정일

문화사학자, '신택리지' 저자, (사)우리땅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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