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시선] 해파랑길 걷기(4.25~27)…임랑해변~울산 주진해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도보 답사 코스인 ‘해파랑길’을 4월 25 일 밤에 출발하여 27일까지 걸을 예정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은 걸어야 할 길, 다시 걸어도 좋은 길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파랑길이고, 멸치에서 고래까지 다 볼 수 있는 길이다.
1985년 12월 창립된 ‘우리땅걷기'(전신 황토현문화연구소)가 창립 40주년 되는 2025년을 맞았다.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서 2007년에 ‘걷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안해 국가 정책으로 만들어진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공원에서 시작해 통일전망대를 지나 두만강의 녹둔도에 이르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문동리를 벗어나 동해남부선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장안읍 임랑리林浪里에 이르자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임랑해수욕장이 있는 이곳 임랑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도반 김자혁씨를 만났다. ‘바람에 날려 왔나, 구름에 싸여 왔나’ 옛 속담이 절로 흥얼거려질 정도로 반가운 조우였다. 그런데 어쩐다? 출발지에서 30km쯤 떨어진 이곳에서 하루 해는 기울어 가는데 밤이슬 피해 고단한 몸을 뉘어야 할 숙소가 마땅치 않다. 난감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헤매다가 해안가 목우촌 음식점을 발견하였다. 그곳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기로 했다. 어제 저녁 잠을 설친 데다 먼 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8시 30분 자리에 들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머물게 된 임랑 북쪽에 왜성산이라고 부르는 이승산이 있다. 높이 92m인 이 산에 임진왜란 때 왜적이 성을 쌓고 주둔하였었다. (…)
지친 일상의 번뇌마저 파도에 씻겨나간 것일까, 몸이 가뿐하다. 가벼워진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길을 떠난다. 진하해수욕장을 지나며 바라본 솔내 민박집, 딸을 출산했는지 솔가지를 끼운 새끼줄이 둘러쳐있다. 다시 바라본 바다는 여전히 집채 만한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저렇게 존재한 바다, 바다를 두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노인은 바다를 늘 라 마르(lamar)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페인 말이었다. 물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바다를 나쁘게 말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조차 바다를 언제나 여자인 것처럼 불렀다.(중략)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바다에도 영향을 미치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저렇듯 밀려왔다가 물러나는 파도처럼 일어났다 스러져 간 나라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도 파도의 일렁임을 품은 바다의 포효는 잠들 줄을 모르는가.
진하 동남쪽으로 명선도는 기암괴석이 무수하고 상록수와 향초가 무성한 무인도인데 그 옛날 신선이 하강하였다는 곳이고, 진하 남쪽으로 솔이 많아서 솔개 또는 송포라는 나루가 있다. 진하 서북쪽으로 진하나루터는 울산시 온산읍 강양리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었던 곳이고, 진하 남쪽으로 깨목거랑이라는 내가 있다. (…)
당월리와 인접한 이진梨津리 일대가 울산신항 건설공사로 어수선하다. 배진 동북쪽으로 소나무가 울창하여 호랑이가 많았었다는 버머리산이 있다. 방도리의 명물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는 춘도椿島일 것이다. 지형이 눈(目)처럼 생긴 이곳에는 참죽나무, 화살을 만들던 대나무, 동백나무가 무성하고 기암괴석이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던 곳이었다 한다.
이제 발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온산공단에 이른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기지 개발 사업지구로 지정된 것은 1974년이었다. 1975년 10월부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가 들어서기 시작하여 그 뒤로 효성알미늄, 온산동제련소, 쌍용석유, 동해펄프, 풍산금속 등 공장시설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에게 비약적 경제성장이라는 부푼 꿈을 안겨주며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장이 가동되면서 주민들에게 안겨진 것은 결코 부자의 행복이 아닌 공단에서 뿜어내는 매연으로 발생 된 ‘온산공단 주민 집단괴질’이라는 무서운 현실이었다. 그리고 공해의 온상이라는 별칭마저 받으며, 한때 온 나라를 공포로 술렁이게 만들었던 온산공단의 공해는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다.(…)
온산공단을 지나자 신라 향가인 <처용가>의 고장, 처용리에 다다른다. 신라시대 바다 가운데서 처용이 올라왔다는 처용암이 있는 곳. 처용은 당시 서역과 신라 사이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바다를 건너 들어온 서역 사람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로 흥덕왕릉이나 괘릉의 무인석을 들기도 하는데, 무인석의 눈이 깊숙하고 코가 우뚝한데다 곱슬머리까지 생동감있게 조각하여 마치 서역인의 형상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신라 제49대 헌강대왕 시대, 당시 수도인 경주에서 동해 어구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총총 들어섰지만, 그 가운데 초가집은 단 한 채를 볼 수 없었으며 거리에 음악이 끊이지 않았고, 사철 비바람마저 순조로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하였던 처용이 집에 들어와 자리에 누운 두 사람을 발견하였는데, 그는 춤추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며 밖으로 물러나왔다.
동경 밝은 달에
밤 이슥히 놀고 다니다가
들어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고나
둘은 내 해었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는걸 어찌리
그의 노래에 귀신이 처용에게 정체를 드러내더니 무릎을 꿇었다. ‘내가 당신의 아내를 탐 내어 지금 그를 상관하였소. 그런데도 당신은 노하지 않으니 감격스럽고 장하게 생각되었다오. 이제부터 당신의 얼굴만 그려 붙여 둔 것을 보아도 다시는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소.'(…)
고래를 배경으로 <백경>을 지은 허먼 멜빌은 책을 쓰기 위해 4년 동안 포경선을 탔다. 그렇듯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쳐 탈고한 그의 소설은 오늘도 여전히 소설의 고전이라는 명예를 누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허먼 멜빌은 <백경>에서 고래잡이 4년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고래잡이 4년은 하버드대학이자 예일대학이었다.’
소설에서 우리는 고래의 생리에서부터 고래 고기 맛에 대해서까지 읽을 수 있는데, 그는 고래 고기 가운데 맛의 백미로 혓바닥 고기를 꼽았다. 그 당시는 고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향유기름을 채취하기 위하여 고래를 잡았기 때문에, 향유고래에서 기름과 혀만 채취하고는 모두 버렸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큰 향유고래 한 마리에서 채취할 수 있는 기름의 양이 50드럼 정도에 이른다고 하니, 고래의 크기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내 나이 열다섯일 때, 출가했다가 절에서 쫓겨나 방랑하던 중에 장생포항에서 붙잡힌 배보다 더 큰 고래를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포경을 금지하고 있어 그렇게 큰 고래가 포획된 모습을 구경할 수 없다. 어쩌다 바다에 쳐놓은 그물에 걸려 죽은 밍크고래 사진을 신문을 통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두 번째 여정이 봄이 완연한 2025년 4월 25일 밤(금)에 출발하여 27(일)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실시된다. 임랑해변에서 서생포 왜성, 울산의 십리대숲 길과 대왕암, 그리고 일산해변까지 이어질 이번 여정의 구체적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일시: 2025년 4월 25일(금)~4월 27일(일)
- 출발시간 및 장소: 저녁 7시, 양재역 12번 출구 서초구청 앞, 전주 저녁 7시 전주 월드컵경기장 출발,
- 참가비: 24만원
- 답사지: 임랑해변, 나사해변, 간절곶, 진하해변, 서생포 왜성, 처용암, 태화강 십리대숲, 태화루, 방어진 항, 대왕암, 주진해변
- 참가비 입금계좌: 국민은행 898301-00-096924 예금주 우리땅걷기
- 참가비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 5일 전 인지: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
(2) 행사일 4일전부터 3일전까지: 참가비 50%를 공제 후 환불
(3) 행사일 1일전부터 당일까지(미참가 포함): 환불액 없음 - 문의전화: 010-9144-2564
- 주의사항: 모든 걷기의 안전은 참석자 본인 책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