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한-아세안이 가까워야 할 이유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주변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였다. 우리의 숙명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새롭고도 가장 강력한 인방(隣邦) 미국을 갖게 되었다. 다시 21세기에 들어서는 아세안이 인방이 되고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3국과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등이다. 여기에 엄연한 독립국인 대만(중화민국)도 넣어야 한다.

동남아는 인종적으로 동북아와 크게 다르다. 한자를 쓰지 않았던 동남아는 한중일과 문화적으로도 크게 다르다. 인도네시아는 아랍 제국에 앞서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다. 명치유신 후에 일본에 합병된 오키나와는 일본보다는 동남아에 가깝다. 냉전시절 중국의 공산화 책략이 말라카해협까지 이르자 위협을 느끼던 동남아제국에서는 중국에 대해 아직도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한국은 일본, 중국보다 동남아와 더욱 가깝게 갈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 등 5방(方)을 포괄하는 답사기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민족의 강역은 고구려 멸망 이후 한반도로 쪼그라들었다. 천년 내에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5方을 포괄하는 문화와 역사의식은 회복할 수가 있다. 가야는 고도의 철기문화를 가진 국가연맹이었고, 왜는 한반도의 연장이었다.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의 중간에 위치하여 명치유신 이후에야 개척이 본격화된 곳이다. ‘일본 속의 한국 찾기’를 더 충실히 하여 해상왕국 백제, 나아가 신라와 가야, 왜를 포괄하는 문화지도를 획정하면 우리 문화는 훨씬 더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핵심은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에 끼워 넣으려는 것이다. 중국역사상 최강이었던 수(隋)와 당(唐)이 고구려에 무참히 당한 패배를 지방정권이 중앙정부에 대항한 역사로 조작하여 오욕을 갈아 없애기 위해서다. 심지어 한족 왕조 가운데 가장 허약했던 송(宋)도 고구려의 자취를 지우기 위해 진력하였다. 이처럼 역사조작은 한족의 오랜 못된 버릇이다. 한민족과 한족의 대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GDP나 항모가 아니다. 뚜렷한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주체성의 확립이다.

부산에서 한·아세안 특별회의가 열렸다. 우리와 아세안의 교역량은 2013년 기준 1353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이는 미국 1035억 달러, 일본 940억 달러, EU 1051억 달러를 넘어선다. 중국·일본은 아세안 국가들과 영토분쟁·과거사 등으로 껄끄러운 앙금이 있는 반면 우리는 그럴 제약요인이 없다. 아세안은 이와 같은 경제만이 아니라 탈북자 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 1980년대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한국을 본받자는 ‘Look East’ 정책을 표방한 바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5方을 더 깊이 알아야 하고,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5방을 활용하며, 더불어 나아가는 지혜를 밝혀야 한다. 이럴진대, 오늘의 내정의 지리멸령과 풍비박산은 얼마나 한심한 짓거리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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