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교역 거점 첫 유네스코문화유산 말레이시아 ‘말라카해협’
200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말라카·조지타운
[아시아엔=노릴라 다우드 아시아기자협회 부회장]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와 조지타운은 오랜 세월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하며 동서양 문화가 녹아있는 도시다. 1970년대 말레이시아 정부도 도시 전체가 유적인 이들의 중요성을 인식해 보존 정책을 수립했다.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약 반세기가 흐른 2008년 7월, 말라카와 조지타운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말라카해협(the Strait of Malacca)에 위치한 항구도시 말라카는 14세기 수마트라섬(Sumatra Island)에서 건너온 파라메스바라(Paramesvara)왕자가 술탄국(말라카왕조)을 건설하면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작은 어촌에 큰 항구와 사원 등이 들어섰고, 인접국 중국, 인도 등지에서 소수민족들이 유입돼 다양한 문화도 공존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말라카에서 사용된 언어가 무려 80여개에 달했을 정도다.
그러나 왕국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488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리발견 중 하나인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넘으며 서양의 동양 진출이 본격화됐다. 다문화가 조화를 이뤘던 말라카도 유럽국가들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16세기 초 동남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은 말라카 이슬람왕국을 멸망시키고 향료무역을 독점했다. 유럽의 기술로는 냉장보관이 힘들어 음식이 부패하기 쉬웠고, 향신료 수요가 높았기 때문이다.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 1494)에 따라 교황으로부터 대서양 동쪽의 통치권을 부여 받은 포르투갈은 말라카를 가톨릭 선교 전초기지로 만들었다. 가톨릭을 신봉한 정복자는 사원과 무덤을 훼손하며 이슬람 영향력이 약화되기를 고대했다. 이때 말라카는 세인트폴 언덕(St. Paul’s Hill), 총독부, 교회, 병원, 대학 등 최초의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게 됐다.
‘대항해시대’를 호령했던 포르투갈의 황금기도 잠깐이었다. 포르투갈은 향료무역으로부터 거둬들인 막대한 수익에 눈이 멀어 자국 산업을 등한시했고, 인도와의 전쟁으로 갈수록 국력이 쇠퇴했다. 결국 17세기 중반, 말라카는 신흥강국 네덜란드의 수중에 넘어가게 된다. 네덜란드는 통치기간 동안 기존의 기반시설을 그대로 인계하며 말라카의 서구화를 가속화시켰다. 세인트 존 힐(St. John’s Hill)에 새로운 요새가 구축됐고, 이전 총독저택은 의사당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네덜란드는 1710년 천주교 성당 성 베드로 교회(St. Peter’s Church)와 1753년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교회 말라카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 Malacca)도 세웠다. 이는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동서양의 연결고리’ 말라카의 상징물로 남아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영국이 서서히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말레이시아의 ‘마지막 정복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말레이시아 문화유산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조지타운(George Town)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설됐다. 영국은 1786년 말레이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페낭(Penang)섬에 당시 국왕이던 조지 3세(George III)의 이름을 따 조지타운이란 도시를 세웠다. 이후 조지타운은 영국 양식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기독교·이슬람·불교·힌두교 등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건축물과 명소로 가득한 ‘문화의 용광로’로 탈바꿈했다.
향신료 탐낸 유럽 말라카해협 도시 식민지배
애초 말라카해협의 두 도시는 향신료를 탐낸 유럽국가들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말레이시아 토착문화에 유럽·이슬람·인도·중국 등 다문화가 융합돼 독특한 건축물과 문화유산을 남겼다. 고대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던 실크로드 교역이 주로 육로를 통해 이뤄졌다면, 말라카 해협은 바닷길로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근대 유럽 열강의 무역 요충지에서 문명의 교차로로 족적을 남긴 것이다. 말라카해협의 역사 도시 말라카와 조지타운에는 동서양 교류의 발자취가 살아 숨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