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④] 인도네시아③···삼장법사와 혜초

삼장법사 이징(왼쪽)과 혜초 스님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이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스리비자야 왕국과 구법승들

[아시아엔=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 인도네시아 가쟈마다대학교 초빙교수, <인도네시아사> <Budaya Spirit dan Politik Korea>(한국의 정신문화와 정치) <작은 며느리의 나라, 인도네시아> 등 저자] 700년 넘게 장수한 인도네시아 스리비자야 왕국은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500년 동안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중심부였다.

이 왕국은 수마트라 남부 빨렘방(Palembang)을 중심으로 말라카(Malacca)해협 양안(兩岸)의 전 수마트라와 말레이반도, 태국 남부와 미얀마와 자바에 걸쳐서 광대한 통치권역을 형성하며 크게 발흥했던 불교왕국이다. 말라카해협의 전략적 요충지를 모두 차지했던 스리비자야는 8세기 말에 이미 400~600톤 규모의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여 인도와 중국을 왕래하는 정기 무역항로를 개척했다.

이 왕국의 통치자는 불교도였으며, 중국과의 교역 품목 중에는 비단과 도자기 이외에도 사찰에서 사용하는 각종 불교용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삼장법사 이징과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당나라 고승 이징(義淨)이 찬술한 스리비자야 왕국 여행기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과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에 당시의 상황이 전해지고 있다. 이징은 “스리비자야에서 1000명이 넘는 승려를 발견했으며, 여러 나라에서 온 장사꾼들이 자주 어울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징은 “인도로 가는 학승(學僧)들은 한두 해쯤 스리비자야에 머물며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추천했다. 그는 672년 37세 때 광저우(廣州)를 떠나 바닷길로 스리비자야의 수도 빨렘방을 거쳐 인도에 도착하여 범어를 배우고 범본(梵本) 불경을 얻어 694년 당나라로 돌아왔다.

이징은 12년에 걸친 인도와 당, 당과 인도 간의 바닷길에서 만난 남해 제국(諸國)의 여행기를 통해서 인도와 스리비자야 왕국 등 여러 나라의 불교상황과 승려들의 생활상, 그리고 일반 서민들의 사회와 풍물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이징은 측천무후(則天武后)로부터 삼장(三藏)이라는 불계 최고의 칭호를 하사받은 당대 으뜸의 고승이었다. 이징의 속명(俗名)은 장웬밍(張文明, 636~713)이며, 유럽에서 발간된 그의 번역본들은 ‘Yijing’ 혹은 ‘I Tsing’으로 원래 저자명을 표기하고 있다.

혜초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신라 스님 혜초(惠超, 704~787)는 열여섯 나이에 당나라에 건너가 금강지(金剛智)라는 중국 이름을 쓰고 있던 천축국(天竺國) 인도의 밀교승 바즈라보디(Vajrabodhi)의 가르침을 받았다. 혜초 스님이 20세가 되었을 때, 스승의 권유로 천축국 인도로 떠나게 되었다. 혜초는 723년 광저우를 떠나 이징의 여행길을 더듬어 바닷길로 인도에 닿아 다섯 천축국(동천축, 남천축, 중천축, 서천축, 북천축)을 섭렵하고, 중앙아시아와 일부 러시아 지역을 거친 후 일찍이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졌던 파미르(Pamir) 고원을 넘고 둔황(敦煌)을 지나 727년, 4년 만에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실로 치열한 구도(求道) 여행이었다.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aul E. Pelliot)가 둔황(敦煌) 막고굴(莫高窟)에서 발견했던 혜초의 기행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아홉 장의 황마지(黃麻紙)를 이어 붙인 두루마리였다. 총 길이 358센티, 너비 28.5센티의 황마지 두루마리는 앞과 뒷부분이 많이 잘려나갔으며, 마모되어 확인할 수 없는 글자까지 합치면 6300여자가 쓰여 있었다. 그러나 여러 관련 자료를 통해 추정하면 <왕오천축국전>의 전체 분량은 약 1만 1300자로 추산된다. 둔황은 오늘날 중국 서북부 간쑤성(甘肅省) 주취안(酒泉)에 있다.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동방견문록>이나 모로코 출신 탐험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의 여행기 <리흘라>(Rihla)보다 5세기를 앞선 기록이 <왕오천축국전>이다. 혜초 스님은 출발지로부터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방향과 소요 시일, 경유지에서 만나는 왕국의 도읍지와 규모, 통치 상황, 주변 왕국과의 관계, 지형과 기후, 음식과 각종 특산물, 의상과 풍습, 주민들의 언어생활, 불교의 발전 정도와 기타 종교 상황 등을 순차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징과 같은 바닷길을 택한 혜초 스님은 사전에 이징의 스리비자야 왕국 여행기를 거듭 독파하였을 것이고, 이징의 권고에 따라 얼마간 스리비자야 왕국에 체류했을 것이다. 잘려나간 <왕오천축국전> 앞부분에 이 왕국에 관한 사실적 묘사를 충실하게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오천축국전>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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