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⑤] 인도네시아④···’보로부두르’ 대사원과 ‘와이삭’ 축제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이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언덕 위의 승방(僧房) 보로부두르
[아시아엔=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 인도네시아 가쟈마다대학교 초빙교수, <인도네시아사> <Budaya Spirit dan Politik Korea>(한국의 정신문화와 정치) <작은 며느리의 나라, 인도네시아> 등 저자] 보로부두르(Borobudur) 대탑사원은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마걸랑(Magelang) 남서쪽에 위치하는데, 인도네시아의 역사문화 중심도시인 족자카르타(Yogyakarta)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보로부두르는 ‘바라(bara)’와 ‘부두르(budur)’ 두 단어의 합성어다. 바라는 산스끄리뜨어의 비하라(vihara)에서 차용하였는데,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힌두교나 불교사원이 있는 공간’을 뜻하는 비하라(bihara 또는 wihara)로 쓰이고 있다. 부두르는 비하라의 어원과 달리 발리(Bali)어의 브두후르(beduhur)에서 차용하여 부두르로 변형되었으며, ‘위쪽’이라는 뜻이다. 이는 인도네시아 불교문화에 정통한 수타르노(Soetarno R.) 교수가 1986년에 출간한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고찰(古刹)>(Aneka Candi Kuno di In-donesia)에 나오는 각주 설명의 일부다.
보로부두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위쪽의 절’ 또는 ‘윗동네의 절’이 된다. 보로부두르는 캄보디아 씨엠레아프(Siem Reap)의 앙코르사원과 인도 마드야 프라데쉬(Madhya Pradesh)에 위치한 산치(Sanchi 사원과 더불어 세계 3대 불탑(佛塔)으로 알려졌다. 기네스북은 2012년 오랜 논란 끝에 이들 세 사원 중에서 보로부두르를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 공식 발표하였다.
위쪽의 절이나 윗동네의 절로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큰 재 너머 대승원(大僧園)’으로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봐도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 인도네시아에 현존하는 세계 최대 불교 사원의 이름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세상의 많은 거대 불교사원과 차별성을 두기 위한 역발상(逆發想)에서 누군가가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을 ‘언덕 위의 승방(僧房)’으로 작명해 놓았다. 이 또한 불교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자들 최대 축일 ‘와이삭’
인도네시아 불자들의 최대 축일은 와이삭(Hari Raya Waisak)이라고 한다. 와이삭은 태음력과 태양력을 둘 다 기초한 인도 달력 2월인 비사카(Visakha) 월의 보름날이다. 북방불교에서는 석탄일을 음력 4월 8일(2017년은 5월 3일)로 정하고 있지만, 남방불교에서는 비사카 월의 보름날을 축일로 삼고 있어서 2017년의 경우 5월 11일이다.
이날을 베삭(Vesak)이라 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어 발음의 편의에 따라 와이삭(Waisak)으로 불린다. 북방불교의 석탄일과는 달리 남방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탄생’과 ‘성불’과 ‘열반’이 모두 이날 하루에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와이삭을 공식적인 국가 종교휴일로 채택하고 있다.
와이삭 축제는 매년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에서 행해진다. 불자들은 축제에 앞서 보로부두르에서 약 7㎞ 거리에 위치한 문띨란(Muntilan) 마을의 믄듯(Mendut) 사원에 모여 봉축 불공을 드리고, 보로부두르까지 불경을 봉독하며 도보로 행진한다. 도보 행진 중간에 잠시 빠원(Pawon) 사원에 머무르는데, 믄듯과 빠원 사원을 거쳐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에 이르는 길은 일직선상에 있고, 옛날에는 돌벽돌을 깐 도보 순례길이 이들 세 사원을 연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도보행진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로부두르에서 와이삭 축제가 벌어지면, 인근의 주민들과 많은 관광객이 운집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인도네시아 불교도들은 자신들의 종교행사가 비종교적 요소가 가미되어 관광 상품화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불교문화는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을 빼고는 설명이 어렵다. 그만큼 보로부두르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인도네시아의 불교왕국 시대는 7세기 중엽 수마트라 중심의 스리비자야 왕국이 열었다. 같은 시기에 자바에도 스리비자야의 불교문화 영향이 전파되어 힌두왕국과 쟁패하면서 8세기 중엽 자바 동북부에서 사일렌드라(Sailendra)로 크게 발흥하였다. 이로써 수마트라와 자바에 불교문화가 만개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이때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이 축조되었다.
사일렌드라 왕조는 9세기 초에 축조를 시작하여 825년경에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을 완공하였다. 산자야 힌두왕국과 결혼동맹으로 자바의 주도권이 산자야로 넘어가면서 보로부두르는 점차 사일렌드라 불교왕국과 불교도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는 1006년에 일어났다.
인근 머라삐(Merapi) 화산의 대폭발로 두 자바 왕국의 터전이 사라지면서 보로부두르 대탑사원도 화산재에 묻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득력이 있는 반론도 있다. 사원 축조의 완성과 동시에 불교의 깊고 오묘한 뜻에 따라 인위적으로 덮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원 기초를 닦은 흙과 사원을 덮고 있는 흙이 화산재 말고도 사원 바닥과 같은 성분의 흙이라는 것이다.
800년 넘게 흙더미에 묻혀 있던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이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재등장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Sir Thomas Stamford Raffles, 1781~1826) 덕분이다.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던 인도네시아가 유럽 정세의 변화로 잠시 영국의 통치하(1811~1816)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때 영국총독으로 바타비아(오늘날의 자카르타)에 등장한 인물이 싱가포르의 설계자인 래플스 경이었다. 말레이어에 통달하고 말레이문화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던 그는 자바의 각종 고문서와 자료를 통해서 보로부두르의 존재를 확신했다.
그는 1814년 탐사에 착수하여 수개월 만에 인류의 소중한 문화재를 발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낸 보로부두르는 다시 네덜란드의 수중에 놓이면서 고초와 쇠락을 거듭하였다. 여러 차례 대륙부 동남아로 진출을 시도했던 네덜란드는 다수의 보로부두르 불상의 머리 부분을 절취하여 불교왕국인 태국의 왕에게 진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총 504기의 부처님이 모셔진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의 불상 중 약 35%에 두상 부분이 없는 이유이다.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적으로 복원하기로 결정, 1973년부터 10년 동안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로 세계인들의 앞에 웅자(雄姿)를 드러내게 되었다. 1990년대 이래로 연간 250만 명이 방문하는 보로부두르는 1991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이적인 불교사원 보로부두르는 폭 124m의 정방형 위에 9층 건물 높이로 세워져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원래는 높이가 42m였으나 현재는 35.3m로 침하되어 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가로 세로가 각각 50㎝, 높이가 30㎝ 크기의 안산암(安山巖)과 화산암(火山巖)을 깎아 돌벽돌로 사용하였는데, 내부의 공간 없이 접착제나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1만 4165㎡에 달하는 면적 위에 100만 개가 넘는 돌벽돌 350만 톤을 완벽한 배수시설 위에 차곡차곡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쌓아 올렸다. 보로부두르를 불가사의하다고 표현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사원을 중심으로 반경 30㎞ 이내에는 보로부두르 축조에 사용한 돌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보로부두르에는 총 73기의 종탑 모형의 스투파(stupa)와 504기의 부처님이 있다. 필자가 보로부두르를 대탑사원으로 칭하는 연유이다. 이곳에는 4개 층에 거쳐서 5㎞에 달하는 회랑이 있고, 회랑 좌우 면에는 총 2500개의 부조(浮彫)가 있다. 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은 1만명이 넘는다. 거대한 조각작품의 숲인 셈이다. 조각 중에는 항해 중인 대형 선박들이 많이 나온다. 사일렌드라 왕조 시대에 이미 인도네시아 군도는 해상 실크로드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이 회랑을 따라 돌면서 마지막 계단에 오르면 종탑 모형의 스투파가 있고, 스투파 안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곳의 불자들은 부처님의 몸에 손을 대고 소원을 말하면, 언젠가는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은 이른 아침에 안개가 걷히기 전에 보아야 한다. 안개 속에 잠긴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면, 누구나 속세의 모든 허물이 정화되어 극락의 문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받는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하나둘씩 조명이 켜지는 늦은 시간에 좀 멀리 떨어져서 보는 보로부두르도 장관이다. 내세를 확신하는 불자들은 보로부두르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