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⑥] 인도네시아⑤···최대 이슬람국, 불교 국가종교로 지정, 불자 200만명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그는 종교 및 인종 등에 전혀 차별을 두지 않는 민주주의적 리더십으로 존경받고 있다.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혜가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인도네시아 불교인구 1% 미만이나 확장가능성 높아 

[아시아엔=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 인도네시아 가쟈마다대학교 초빙교수, <인도네시아사> <Budaya Spirit dan Politik Korea>(한국의 정신문화와 정치) <작은 며느리의 나라, 인도네시아> 등 저자] 인도네시아는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대 인구대국으로 전체 인구 2억 5300만 명(2016년)의 87%가 무슬림인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다.

국토도 동남아의 적도 상에 1만 7508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동서로 최대 6000㎞, 남북으로 2000㎞로 길고 넓게 분포되어 육지면적만 192만㎢에 달한다. 세계 최대의 도서(島嶼) 대국이기도 한 이 나라의 내해(內海) 면적은 650만㎢로 육지 면적과 합치면 미국(984만㎢)과 엇비슷한 842만㎢가 된다.

이 나라의 정체(政體)는 공화제이며 종교적으로는 세속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등식이 적용되어 모든 국민은 국가가 보장하는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국가종교로 이슬람 이외에 힌두교와 불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나아가서 유교(儒敎)까지 보장하고 있다. 당연하게 국가 공휴일에 종교 축일이 가장 많다.

인도네시아 통계청의 200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0.8%인 170만명이 불교도로 나타났다. 2016년 인구를 같은 백분율로 적용해도 불교도는 약 20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잠재적인 불교도는 이 수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2006년 2월 유도요노 대통령에 의해서 유교(儒敎)가 인도네시아의 여섯번째 국가종교로 공인되면서 주민등록증(KTP)에 자신의 종교를 유교로 명시한 국민이 전체 인구의 약 4%에 달했다. 1000만 명이 넘는 숫자다. 거의 모두가 중국계인 이들을 잠재적인 불교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하르토 정권 32년 동안, 군부의 반중(反中)·반공(反共) 정책에 따라 이들은 질곡(桎梏)의 세월을 보냈다. 많은 숫자가 해외로 탈출하였고, 불교사찰이 폐쇄되었으며, 한자 간판이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중국문화를 상징한다 하여 붉은 글씨를 엄금하고, 촛불까지도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직도 이들이 선뜻 불교도로 나서기를 꺼리는 이유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중국계 국민에 대한 인식과 행정적 경계가 와히드(A, Wahid)와 메가와티(Megawati S.) 대통령 통치기를 거치면서 점차 우호적으로 변화하였다. 유도요노(S. B. Yudhoyono)는 자신의 통치 말기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문서에 중국(中國)은 띠옹꼭(Tiongkok)으로, 중화(中華)는 띠옹후아(Tionghua)를 사용한다는 대통령령을 발표하였다.

인도네시아 불교는 다양한 불교문화가 혼재되어 발전해왔다. 그 갈래를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고대 인도의 초기불교인 마하야나(Mahayana), 태국의 테라바다(Theravada), 일본의 선불교(禪佛敎), 뜨리다르마(Tridharma)라 칭하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道敎)가 합쳐진 유불선교(儒佛仙敎),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을 건축했던 사일렌드라와 마쟈빠힛 왕조에서 번성했던 밀교 형태의 탄뜨라야나(Tantrayana) 등이다.

이 나라의 불교도는 대부분이 중국계다. 이들은 수도 자카르타(Jakarta) 일원에 거주하거나, 수마트라 리아우(Riau) 주와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를 에워싸고 있는 리아우군도 주, 그리고 인근의 주석(朱錫) 산지인 방까벌리뚱(Bangka-Belitung) 두 섬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은 모두 전통적인 중계무역항 싱가포르항(港) 인근에 모여들던 중국인 후예들의 군거지다.

비록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이슬람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 자바(Jawa)족이나 발리(Bali) 동쪽 롬복(Lombok) 섬의 사삭(Sasak)족 중에 불교도가 발견된다. 이들의 불교는 중국계 후예들과는 달리 과거 스리비자야 왕국의 불교적 전통이 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의 차이나타운 글로독(Glodok)에 금덕원(金德院)이라는 큰 절이 있다. 다르마박티 사원(Wihara Dharma Bhakti)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와 공자를 같이 모신 서원(書院) 같은 사원이다. 이 사원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시대 초기인 1650년 중국 남부 푸젠(福建) 사람들이 세웠다. 금덕원의 중국어 발음인 킴텍레(Kim Tek Le)라고 명명하고 고단한 이주노동자들의 안식처로 삼았다.

네덜란드는 오늘날의 자카르타인 바타비아(Batavia) 건설을 위해서 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주로 푸젠성 출신들이었다. 1740년 10월 벌어진 앙케(Angke) 사건은 과다하게 집중된 중국인들에 놀란 네덜란드 VOC정부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대량학살이었다. 1만명의 중국인이 희생되었고, 킴텍레(金德院) 사원도 이때 소실되었다. 초기 불상들이 잿더미 속에 남아 있었고, 생존한 중국인 후예들이 그 후 계속된 정치적 격변의 인위적 재앙 속에서도 금덕원은 재건과 복원을 거듭하였다. 이곳에는 1825년 제작된 범종이 남아 있어서 오늘도 먼 곳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인도네시아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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