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⑭] 미얀마①···대승불교·밀교 등 11세기까지 ‘공존’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이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미얀마 어떤 나라인가?

[아시아엔=조준호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동국대·인도 델리대 불교학과 석박사, BK 21 불교사상연구단·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연구교수 역임. 주요논문 ‘대승의 소승폄하에 대한 반론’ ‘위빠사나 수행의 인식론적 근거’ 등.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 저자, <인도불교 부흥운동의 선구자-제2의 아소카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 역자] 미얀마는 인도 동부와 방글라데시와 함께 ‘북벵골만’에 위치한 나라로, 5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서쪽으로 방글라데시와 인도, 북동쪽으로는 중국, 동쪽으로는 라오스, 남동쪽으로는 태국이 위치한다. 국토 면적은 67만 6578㎢로 세계 40위이다. 한반도의 3배 크기이며, 대륙부 동남아 나라 가운데 가장 크다. 미얀마는 남북으로 2040km에 달하여 전체적으로 열대와 아열대로 고온다습한 열대몬순기후대에 속해 인도와 비슷하다.

미얀마의 공식적인 국가 이름은 ‘미얀마연방(The Union of My-anmar)’이며 정치체제는 대통령중심제다. 1989년 5월 버마 연방(The Union of Burma)에서 개칭했다. 미얀마의 수도는 과거에 랭군(Rangoon) 또는 양곤(Yangon)에서 2005년에 네삐도(Nay pyi taw)로 천도(遷都)하였다. 인구는 5689만418명(2014년 인구조사)으로 세계 24위다.

‘버마’의 어원은 빠알리(Pali)어의 ‘brahma(뛰어난)’와 관련하여 설명되어 왔지만, 이는 미얀마 북부지역(upper Burma)을 지칭한 ‘머람마(mramma)’가 와전(訛傳)된 것이라 한다. 머람마는 버마족이 히말라야의 티베트고원에서 남하하여 현재의 미얀마 북부지역에서 머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민족 구성으로는 버마족 68%, 샨족 9%, 꺼인족(옛 명칭 까렌족) 7%, 라카인족 4%, 중국계 3%, 인도계 2%, 몬족 2%, 그 외 까친족, 친족, 꺼야족 등의 소수종족이 나머지 5%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불교 인구는 89%, 기독교 4%(침례교 3%, 가톨릭 1%), 이슬람 4%, 그리고 토속신앙 1%와 그 밖에 2%의 다른 종교 인구로 추산된다.

인종 계통상으로는 미얀마의 주요 민족인 버마족은 ‘티베트버마계(Tibeto-Burmese)’로 분류한다. ‘사이노티베트(Sino-Tibetan)’족의 지류인데, 이들은 원래 중국과 티베트에 이어 히말라야 산록 그리고 인도 아대륙의 동부와 동북부 등의 광범위한 지역에 살고 있다. 원래 미얀마인들의 기원지는 히말라야의 티베트고원 쪽에서 시작하여 차츰 현재의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이주하였다. 미얀마인들은 불교의 기원과 관련 있는 석가족처럼 ‘태양의 후손’이라 하고 공작을 민족의 상징 새(鳥)로 여긴다. 나라꽃은 붓다의 반열반과 관련한 사라나무(Shorea robusta)의 꽃이다. 미안마력(歷)은 M.E.로 표기하며, 불기 2561년이 미얀마력 1379년이다.

불교의 전래

미얀마는 지리적으로 인도대륙과 맞닿아 있다. 오래전부터 육로는 물론 해로를 통해 서로 내왕했는데, 과거에는 육로보다는 해로가 더 이동에 용이했다. 인도의 영향은 미얀마를 넘어 라오스나 캄보디아 그리고 태국 등 광범위한 지역에까지 이르렀으며, 기원전부터 인도와 동남아는 해로를 통해 민족의 이동과 문화교류, 무역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지리적 연계성과 관련하여 인도불교의 미얀마 전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석가족과 미얀마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들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더가웅(Tagaung) 건국 전설이다. 미얀마에 최초로 세워진 더가웅 왕국은 기원전 850년경 인도 석가족이 이주해 건국한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더가웅 왕국은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으로부터 침입한 이민족에 의해 멸망했다고 한다. 그 후 부처님 재세(在世) 시에 코살라국으로부터 멸망당한 석가족이 현재의 미얀마로 도망쳐 와, 더가웅 왕국의 남은 일족과 힘을 합쳐 2차로 왕국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인도와 미얀마가 육로는 물론 해로도 바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든 미얀마의 왕조와 왕들은 시원을 석가족의 계보에서 구한다. 더 나아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육로를 통해 직접 미얀마를 몇 차례 내방하였다고도 한다. 부처님은 500명의 아라한과 함께 미얀마를 방문하여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으며, 아난다에게 미래에 이 땅에서 불교가 크게 번영할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현재 미얀마불교의 상징이며 구심점 역할을 하는 쉐다곤 파고다의 건립을 부처님과 연결시키는 전설도 전한다. 율장(Vinaya Piṭaka) ‘대품’에 의하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고자 부처님께 최초로 공양을 올렸던 사람들은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a)였다. 이들은 먼 거리의 국가를 왕래하는 대상(隊商)이었는데, 마침 보드가야를 지나다가 부처님을 뵙고 최초로 귀의한 제자이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후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은 미얀마에서 인도 서북쪽까지 무역하는 대상으로 보드가야를 거쳐 다시 동쪽의 미얀마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이때 부처님께 올린 공양에 대한 답례로 부처님은 이들에게 여덟 개의 머리카락을 뽑아 주었다고 한다. 당시의 부처님 머리카락을 안치한 곳이 바로 쉐다곤 파고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설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미얀마인들의 불교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보다 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미얀마의 불교 전래 역사는 B.C.E. 3세기경 인도의 아쇼까왕과 관련해서다. 이때 불교의 제3차 결집이 이루어졌고 아쇼까왕이 인도 변경과 다른 나라에 불교 전도단을 파견했다는 내용이 고대 문헌과 함께 아쇼까 비문의 마애법칙(磨崖法勅) 제13장에도 기록된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스리랑카 역사서에는 아홉 군데의 포교 지역이 나타나는데 그중 한 곳인 수와르나부미(Suvarṇabhūmi, Pali: Suvaṇṇabhumī)라는 지명이 미얀마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수와르나부미는 ‘황금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현재 미얀마 전역에 건립된 황금색 파고다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는 시기적으로 버마족이 아직 미얀마 땅에 이주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은 ‘황금의 땅’을 의미하는 미얀마 남부의 몬(Mon)족 지역의 타통(Thaton)을 지칭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얀마 외에도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는 수와르나부미를 자기 나라와 관련짓는 경우가 많다. 몬족은 호주-아시아계 인종으로 인도는 물론 동남아 지역에 분포하는 민족이다. 캄보디아와 태국 그리고 베트남 등지의 크메르족도 여기에 속한다. 미얀마에서는 몬을 탈라잉(Thalaing)이라고도 부르는데, 탈라잉은 남인도의 지명에 유래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여러 동남아국의 불교 전래와 수용은 몬족과 관련이 큰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티베트고원에 거주하던 버마족은 차츰 남하하는 과정에서 몬족의 불교를 접촉하게 되었다. 몬족 나라는 동인도나 남인도 그리고 스리랑카와 해로를 통해 교류했는데, 이러한 나라들과 미얀마는 벵골만을 무대로 해양불교를 꽃피웠다. 인도불교사에서도 벵골만에 연해 있는 동인도나 남인도의 아마라와띠 나가르주나꼰다 그리고 칸치뿌람 등지는 유명한 불교 중심지였다. 이는 중국 구법승인 현장 등의 여행기에도 증명되지만 현재에도 끊임없이 발굴되는 불교 유적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남부 미얀마의 몬족 수도인 타통에서부터 스리랑카에 이르기까지 해로를 통한 교역로가 매우 이른 시기부터 형성되어 있었으며, 인도불교가 쇠망해진 이후에도 스리랑카와 미얀마가 후대까지 지속적으로 불교 교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 것이다. 5세기 초기불교 경전의 유명한 삼장 주석가인 붓다고사(Buddhaghosa)가 남인도 출신이라는 주장과 함께 타통과 관련이 있는 남부 미얀마 출신이라는 주장도 바로 이러한 해로를 통한 불교 교류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에는 인도의 아소카 시대인 B.C.E. 3세기 전후에 이미 다양한 인도 문화가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바라문 힌두교는 물론 초기불교의 여러 부파, 대승불교 그리고 밀교 등이 함께 전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종교 문화가 혼재된 상황은 미얀마뿐만 아니라 다른 동남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이나 계속해서 발굴되는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도 증명되는데,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여러 보살상과 밀교의 따라(Tara)상이 함께 출토되었다. 미얀마에서도 대승불교와 밀교 등도 함께 신봉되는 다문화적인 상황이 11세기경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상좌부불교만이 국가적으로 주요 종교로 공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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