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⑬] 스리랑카④···물질 앞세운 타종교 무차별 선교에 ‘무기력’

스리랑카에 있는 카톨릭 교회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이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 식민지 거쳐 1948년 독립

[아시아엔=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 스리랑카 팔리불교대 불교사회철학과·동 대학원 졸업, 동방대학원대학교 박사, 박사논문 ‘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연구’, <마음비움에 대한 사색> 저자] 캔디 왕조와 영국 간에 조약을 체결할 때, 왕권을 영국에 넘겨주되 영국은 불교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즉 불교의 관습과 의례를 존중하여 그에 대해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불교를 박해하였다.

그 반발로 싱할라 민족주의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한 자각은 ‘불교부흥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873년 모홋띠왔떼 구나난다(Mohoṭṭivattē Guṇānanda, 1823~1890) 장로가 빠나둘라(Panadula) 토론에서 크게 승리함으로써 스리랑카의 불교도들은 자신감과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그 무렵 우연히 스리랑카를 방문했던 미국인이 이 토론에서 크게 감명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가 토론의 진행 상황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을 접한 헨리 스틸 올코트(Henry Steel Olcott, 1832~ 1907) 대령은, 1880년 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 1831~ 1891) 여사와 함께 직접 스리랑카로 건너왔다. 그는 불교를 공부하여 확신을 얻게 되자 불교에 귀의했고, 스리랑카 불교도들의 정신 앙양을 위해 헌신하였다. 스리랑카의 불교도들은 올코트의 영향을 받아 불교민족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되었다.

한편 1880년 올코트 대령과 블라바츠키 여사가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아나가리까 다르마빨라(Anagārika Dharmapāla, 1864~1933)는 16세였다. 그는 친분이 있던 구나난다 장로를 통해 두 외국인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의 영향으로 그는 20세에 출가하여 스리랑카와 인도불교를 부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의 스리랑카 승가는 아나가리까 다르마빨라가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암·아마라푸라·라만냐 등 3개 니까야 사찰 6천곳 승려 1만5천명 

스리랑카 불교의 역사는 대사파와 무외산사파의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던 무외산사파는 스리랑카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 현재의 스리랑카불교는 상좌부(Theravāda)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상좌부의 관점에서 보면 법난을 잘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스리랑카는 16세기부터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 통치하에 들어갔다. 1505년부터 1658년까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1658년부터 1796년까지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으며, 1815년부터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48년 독립했다. 이처럼 스리랑카는 440년간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과거의 찬란했던 불교문화와 전통이 무참히 파괴되고 짓밟혔다.

현재의 스리랑카 불교는 세 개의 니까야(Nikāya, 部派)로 이루어져 있다. 씨암 니까야(Siam-Nikāya), 아마라푸라 니까야(Amarapura-Nikāya), 라만냐 니까야(Rāmañña-Nikāya)이다. 이 세 니까야에는 다시 수많은 다른 분파(分派)가 있으며, 어떤 분파는 카스트(caste, 신분제도)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어느 부파든 교리적 차이는 별로 없다.

먼저, 씨암 니까야(Siyam Nikāya)는 끼르띠스리라자싱하(Kīrti Śrī Rājasiṅgha, 1747~1782) 왕의 초청을 받은 태국의 우빨리(Upāli) 장로에 의해 1753년 7월 19일 설립되었다. 이 부파의 이름은 태국의 옛 국명 ‘씨암 왕국(Kingdom of Siam)’에서 유래한 것이다. 씨암 니까야는 스리랑카 승려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싱할라족이며, 고위가마(goyigama, 농부) 계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씨암 니까야는 아스기리야(Asgiriya)와 말왓따(Malvatta)로 나뉜다.

다음으로 아마라푸라 니까야(Amarapura Nikāya)는 버마(Burma, 지금의 미얀마)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스리랑카의 승려들에 의해 1802년 설립되었다. 이 부파의 이름은 미얀마(당시는 버마) 왕국의 옛 수도였던 아마라푸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니까야에는 약 1만2000명의 승려가 소속되어 있다. 아마라푸라 니까야는 빠르게 성장하였으나, 이후 지리와 계층(카스트)의 정체성 및 다른 분쟁들로 인해 많은 부파로 나뉘었다.

1940년대에는 자체 마하나야까(대승정)를 가진 30개 이상의 부파로 나뉘었다. 그 후 분열된 부파를 통일시키기 위한 작업이 계속되어, 1969년 이들 하위 분파들을 결합하려는 노력이 성공하였다. 아마라푸라 니까야의 대승정 중 한 명인 마디헤빤냐시하(Maḍihē Paññāsīha, 1913~2003) 비구는 승단통일 운동을 전개한 선도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는 다시 구심점을 잃고 중앙집권적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라만냐 니까야(Rāmañña Nikāya)는 1864년 버마의 라뜨나뿐냐위하라(Ratnapunna-vihāra)에서 네이야담마무니와라(Ñeyyadhamma Munivara) 상가라자(Saṅgharāja, 僧王)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스리랑카로 귀국한 암바가하왓떼사라낭까라(Amba-gahawatte Saraṇaṅkara)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부파는 태국의 탐마윳 니까야(Thammayut Nikāya)와 유사하다.

라만냐 니까야는 세 부파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다. 이 부파에 소속된 승려는 약 6000명에서 8000명으로 추정된다. 다른 두 부파와는 달리 라만냐 니까야는 구조적으로 단일 부파로 한 명의 대승정만 있으며 지역 단위로 조직되어 있다. 이 부파는 특정 카스트와 유대가 없지만, 재가 신자 중 많은 사람이 까라와(karāva, 어부) 카스트 출신이다.

스리랑카의 승려들은 교육과 같은 목적으로 자신의 부파가 아닌 다른 부파 소속의 사찰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부파 간의 갈등은 많이 약화된 편이다.

현재의 스리랑카는 다종교국가이다. 불교는 전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싱할라족이다. 스리랑카에는 약 6000개의 사찰과 1만5000여명의 승려가 있다. 스리랑카는 동남아 상좌부불교의 종주국(宗主國)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

현재의 스리랑카불교는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승가 내부에 물질주의가 침투해 들어와 점차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 밖으로는 물질을 앞세운 타 종교의 공격적 선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기존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이로 미루어 스리랑카불교의 미래는 낙관하기 어렵다.(스리랑카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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