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 19] 태국①···와치라롱낀 국왕 작년말 ‘라마’ 10세 즉위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이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아시아엔=김홍구 부산외국어대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 태국의 국토 면적은 51만 3120㎢로 세계 51위이다. 이는 프랑스나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와 비슷한 크기다. 한반도의 2.3배, 대한민국의 5배이며 평야가 많다.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전 국토는 방콕을 포함해 77개의 도로 나뉘며 북부 9개, 중부 21개, 동북부 20개, 남부 14개, 동부 7개, 서부 5개의 도로 구성되어 있다.

태국의 인구는 약 6800만명(2014년)으로 방콕 825만, 나컨랏차씨마 252만, 싸뭇쁘라깐 183만, 우본랏차타니 174만, 컨깬 174만, 치앙마이 171만, 촌부리 155만, 쏭클라 148만, 나컨씨탐마랏 145만, 논타부리 133만명 등이다(2012년 현재).

다수 종족은 타이족이지만 라오스인, 말레이시아인, 캄보디아인, 중국인, 인도인 등도 거주하고 있으며 중국 등에서 이주해 온 고산족들도 있다. 비(非)타이계 민족 중 최대의 인구를 가진 소수종족은 화인(華人)이다. 태국 내 화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14%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2012년), 부분적으로 중국계 혈통을 가진 수까지 합하면 최대 40%까지 추산되고 있다. 종교는 상좌부불교가 주종이며 인구의 95%가 신봉한다. 이 외는 이슬람교, 기독교, 대승불교도 믿고 있다.

타이어는 고유의 문자를 갖고 있다. 고대 인도에서 사용하던 문자를 본떠서 만든 캄보디아 문자의 고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1283년 쑤코타이 왕조의 람캄행 대왕이 만들었다. 최초의 타이어 문자는 람캄행 대왕의 비문에 남아 있는데, 수 세기에 걸쳐 그 형태를 변화시켜 왔다.

타이족은 중국 남부로부터 점차 인도차이나 반도로 이동하였으며 13세기에 쑤코타이 왕조(1238~1438), 14세기에 아유타야 왕조(1350~1767)를 세웠다. 이후 1767년 버마군의 침략으로 아유타야는 멸망하고, 15년간의 단명에 그쳤던 톤부리 왕조(1767~1782)를 거쳐 1782년에 랏따나꼬씬 왕조(1782~현재)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헌군주제·상하 양원제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으며 현재 국가원수는 와치라롱껀(Vajiralongkorn) 국왕이다. 1952년생인 와치라롱껀 국왕은 그의 아버지 푸미폰 국왕에 이어서 2016년 12월 라마(Rama) 10세로 즉위했다. 태국의 정부 형태는 내각책임제이며 국회는 상·하 양원으로 구성된다. 총리는 선출직 하원의원 중에서 뽑는다(또는 비선출 임명직도 가능). 임기 4년의 하원은 지역구 의원과 정당명부제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 6년의 상원의원은 임명직으로 구성된다.

인도 최초의 통일왕조인 마우리야 왕조(Maurya, B.C. 317~B.C. 180)의 3대 왕 아쇼까(Asoka, B.C.269~232) 대왕은 전쟁을 통해 역사상 최대의 지배영역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불교 옹호정책을 펴 정법정치(正法政治)를 천명하고 자비와 도덕률을 강조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북인도에서만 교세를 떨치고 있었던 불교를 세계의 종교로 바꾸어 놓은 데 있다. 아쇼까 대왕은 인도 밖의 여러 지역-실론(스리랑카),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쑤완나품(Suvarnabhumi, Suwannaphum, the Golden Land)-으로 전법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인도 아쇼까 대왕때 불교 전래

이를 통해 불교는 세계적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데, 아쇼까 대왕의 아들 마힌다(Mahinda)가 실론에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를 전파하여, 실론의 상좌부불교는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의 모태 역할을 했다.

마힌다에 교화된 실론의 국왕 띳사(Tissa)는 포교를 위해 사원을 지어 희사했는데, 이것이 상좌부불교의 근거지인 마하위하라(Maha Viharaya,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大寺’)이다. 이후 실론의 불교는 인도 대륙의 불교교단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해 갔으며, 마하위하라 중심의 상좌부불교가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각지로 보급·전파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아쇼까 대왕은 쑤완나품 지역에 소나(Sona)와 웃따라(Uttara)를 파견했다. 이들은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와 중국 상인들은 이전부터 이 지역에서 금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쑤완나품 지역이 정확히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몬(Mon)족과 미얀마족이 만든 비문이나 경전에서는 이 지역은 미얀마에 있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는데, 반대하는 측에서는 아쇼까 대왕이 소나와 웃따라를 미얀마에 보낸 증거가 없으며 불교가 5세기 전에 이곳에서 발전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태국에서는 이 지역을 쑤판부리, 나컨빠톰, 랏차부리, 나컨씨탐마랏 지역이라고 주장하며 쑤완나품의 수도를 나컨빠톰(Nakhon Pathom)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좌부불교가 동남아시아에서 지배적인 종교가 되기 전 이 지역 왕국들은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었다. 1세기경 세워진 동남아 최초의 왕국인 부남(Funan, 扶南, 68~550) 왕국에는 상좌부와 대승불교 모두 성행했다. 6세기 중엽 진랍(真臘, Chenla, 550~802) 왕국이 대두하자 부남의 영토는 축소되었으며 7세기 중엽에는 멸망했다. 진랍 왕국은 힌두교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불교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짜오프라야 강 유역에 세워진 몬족의 타와라와디 왕국(Dvarav-ati, A.D. 6~13세기)은 상좌부불교를 신봉했다. 타와라와디 왕국이 번성하고 있을 때 수마트라 섬에서는 스리비자야(Srivijaya, 650~1377) 왕국이 발흥했다. 이 왕국은 대승불교를 믿었다. 이라와디 강 하류 삐(Pyay, Prome)를 중심으로 쀼족의 왕국(Pyu city states, 驃國, B.C. 2~A.D. 11세기)도 세워졌다.

쀼족은 티베트-버마 계통으로 나중에 버마족으로 흡수되었는데, 그들은 상좌부, 대승불교와 힌두교, 민속신앙이 혼합된 종교를 믿고 있었다. 미얀마 남부 몬족 왕국에서는 상좌부불교가 전래하여 타통(Thaton)을 중심으로 번창했다.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는 참(Cham)족이 세운 임읍(林邑, 占城, 占婆, Champa, 192~1832) 왕국이 있었는데 이 왕국은 힌두교와 대승불교를 믿었다.

타이족이 중국 남부로부터 이주해 오기 전 현재 태국 지역은 캄보디아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타이족이 남중국(南詔國, 大理國, 650~1253)에 있을 때는 중국의 불교인 대승불교를 믿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크메르 왕조에서는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를 믿었다.

쑤코타이 왕국(Sukhothai, 1238~1438)

타이족은 1238년 당시 쑤코타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앙코르 왕국을 몰아내고 쑤코타이 왕국을 건립했다. 이후 쑤코타이 왕국은 200년 동안 9명의 왕이 통치했다. 쑤코타이 왕국의 3대 왕인 람캄행(Ram Khamhaeng, 1279~1298) 대왕은 과거 이 지역을 통치했던 크메르 색채의 대승불교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시 상좌부불교의 중심지였던 남부 태국의 나컨씨탐마랏(Nakhon Si Thammarat)에서 고승을 초빙했다. 이후 상좌부불교는 고대 태국의 왕권을 정당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이자 민중의 신앙대상으로서 태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람캄행 대왕의 뒤를 이어 쑤코타이 왕국의 불교를 크게 진흥시킨 왕은 리타이(Lithai, 1347~1368 또는 1374)였다. 리타이 왕은 그의 저서인 <불교우주론>(Traiphuum Phra Ruang, 일명 Traibh-umikatha)을 통하여 우주 구조를 설명하고 태국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기구의 정당화를 설명했는데,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까지도 태국사회에서 정치적 유용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철학자라고도 불릴 만큼 불교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삼장(三藏)을 두루 이해한 최초의 군주였다. 목뜨마(Martaban)에 있던 스리랑카 스님을 쑤코타이로 초청해 불교의 융성을 도모했으며 자신도 출가생활을 했다. 이때부터 태국에는 단기출가의 습속이 만들어졌다. 또한 그는 최초로 비구와 사미승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이웃 나라들에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으며 많은 사원, 불상, 불탑을 건축하고 산 위 4곳에 불족적(佛足跡)을 모셔 두기도 했다.

란나타이 왕국(Lannathai, 1292~1775)

짜오프라야 강 유역에 거주한 타이족 중 한 종족이 쑤코타이 왕국을 건설했을 때 북서부 고원에는 또 다른 종족이 몬족을 몰아내고 란나타이 왕국을 세웠다. 고대 치앙쌘 왕국의 멩라이(Mengrai, 1292~1311) 왕이 람푼의 몬족 왕인 예바(Ye-Ba)를 패퇴시킨 후 치앙마이에 도읍을 세우고 란나타이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멩라이 왕 이전 란나타이 지역의 불교는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가 혼합된 형태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타이족이 중국 남부에서 태국 땅(란나타이)으로 이주해 왔을 때는 중국의 대승불교를 갖고 왔을 것이며, 크메르의 영향력이 강하게 나타난 곳이었기 때문에 대승불교의 영향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승려들이 육식을 하지 않는 등 대승불교의 다양한 전통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멩라이 왕 이후 쑤코타이 왕국과 마찬가지로 상좌부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란나타이 왕국의 상좌부불교는 하리푼차이(Hariphunchai)를 수도로 삼았던 타와라와디 왕국의 상좌부불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란나 왕국 불교 발전의 황금기는 띠록까랏(Tilokarat, 1442~1477) 왕 때였다. 치앙마이에서 500인이 출가했으며, 많은 사원을 신·개축하고 스리랑카로부터 들여온 보리수나무들을 심었다. 왕은 1447년 이후 두 차례 단기출가해 법과 율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불기 2000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하포타람이라는 사원도 만들었는데, 사원 양식은 인도의 부다가야(Buddha Gaya)와 스리랑카 양식을 본뜬 것이다. 이어 프라므엉깨우(Phra Muang Kaeo, 1495~1525) 왕 때 란나타이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1200명의 출가의식이 치러졌다.(계속)

필자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 한국동남아학회장, 한국태국학회장, 국제지역학회장, 한국동남아연구소장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태국의 탐마라차와 테와라차 특성비교’ ‘태국과 한국의 불교정책 비교: 근대화 과정 전후를 중심으로’ ‘태국 승가법과 국가권력’ 등과 <태국불교의 이해> <태국문화의 즐거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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