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아시아불교⑩] 스리랑카①···인도승려들로부터 붓다 가르침·인도문화 전수받아

3일은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의 자비와 은총이 독자들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시아엔>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의 어제와 오늘을 <불교평론>(발행인 조오현)의 도움으로 소개합니다. 귀한 글 주신 마성, 조준호, 김홍구, 송위지, 양승윤, 이병욱님과 홍사성 편집인 겸 주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아시아엔=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 스리랑카 팔리불교대 불교사회철학과·동 대학원 졸업, 동방대학원대학교 박사, 박사논문 ‘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연구’, <마음비움에 대한 사색> 저자] 스리랑카의 공식 국명은 ‘스리랑카민주사회주의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남단에 있는 섬나라로 국토의 면적은 65,610㎢, 인구 20,966,000명이다. 법률상 수도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 코테(Sri Jayawardenepura Kotte)이고, 가장 큰 도시는 콜롬보(Colombo)다.

스리랑카의 옛 국명은 땀바빤니(Tambapaṇṇi, 銅葉洲), 랑까디빠(Laṅkādīpa, 楞伽島), 싱할라(Siṁhala, 獅子國), 실론(Ceylon, 錫蘭) 등이다. 현재의 국명인 ‘스리랑카(Śrī Laṅkā)’는 1972년 6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고대의 국명인 ‘랑까디빠(Laṅkādīpa)’에서 섬이라는 의미의 디빠(dīpa)를 빼고, 여기에 ‘번영’이라는 의미의 스리(Śrī)를 더한 것이다.

스리랑카는 지리적으로 인도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양국 간의 오랜 유대로 인해 스리랑카는 인도와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했다. 기원전 3세기경 인도의 승려들이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파하면서 붓다의 가르침뿐 아니라 ‘불교인도(Buddhist India)’의 문화와 문명까지 이식시켰다.

불교의 전래

싱할라(Siṁhaḷa) 왕조의 명단은 <디빠방사>(Dīpavaṃsa, 島史) <마하방사>(Mahāvaṃsa, 大史) <쭐라방사>(Cūḷavaṃsa, 小史)와 같은 스리랑카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연대기에는 싱할라족 통치자는 물론 외국인 통치자 명단도 포함되어 있다. 스리랑카 불교의 역사는 곧 싱할라 왕조의 역사와 운명을 같이했다. 처음부터 싱할라 왕들은 불교를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아리안(Aryan) 싱할라 왕조는 기원전 543년 인도의 방가(Vaṅga, 현재의 Bengal) 왕국으로부터 추방된 위자야(Vijaya) 왕자와 700명의 추종자가 이 섬에 도착하여 ‘땀바빤니(Tambapaṇṇi)’라는 왕국을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땀바빤니’ 왕국(B.C. 543~505)을 계승한 ‘우빠띳사 누와라(Upa-tissa Nuwara)’ 왕국(B.C. 505~377)을 종식시키고, ‘아누라다푸라(Anurādhapura)’ 왕국(B.C. 377~A.D. 1017)을 세운 사람은 빤두까바야(Paṇḍukābhaya, B.C. 377~307) 왕이다. 그는 수도를 아누라다푸라로 옮겼는데, 이곳은 약 1400년 동안 스리랑카의 수도로 남아 있었다.

빤두까바야 사후 그의 아들 무따시와(Muṭasīva, B.C. 307~247)가 왕위를 계승했다. 무따시와 왕은 60년 동안 재위했는데, 그의 둘째 아들 데와남삐야띳사(Devānampiyatissa, B.C. 247~207)가 왕위를 계승했다.

데와남삐야띳사 왕의 통치 기간에서 가장 큰 사건은 마힌다(Ma-hinda)의 스리랑카 도착이다. 마힌다는 전도단을 이끌고 왕의 즉위 2년 스리랑카에 도착하여 사냥하던 왕을 만났다. 왕은 그를 대단히 명예롭게 맞이했고, 그가 전도한 새로운 종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왕은 마힌다가 설한 <상적유소경>(象跡喩小經, Cūḷa-hatthipadopama-sutta)(MN 27)을 듣고 개종하였다.

이와 같이 기원전 250년 인도 아쇼까(Asoka) 왕의 아들 마힌다에 의해 스리랑카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되었다. 이것을 공인된 불교의 전래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관한 정보와 인도의 강력한 불교 황제의 위대한 활동에 관한 소식이 이 섬에 전해졌다. 마힌다가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를 전했다는 것은 그가 최초로 스리랑카에 불교의 승가(僧伽, Saṅgha)를 성립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율장에 의하면 변방에서 구족계(具足戒, upasampadā)를 수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섯 명의 장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힌다는 다른 네 명의 장로들과 한 명의 사미와 함께 스리랑카로 건너와 최초로 불교의 승가를 성립시켰다.

스리랑카 연대기에 의하면, 마힌다와 데와남삐야띳사 왕과의 첫 만남에서 왕과 수행원들은 불교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였다. 다음 날 마힌다와 그의 동료들은 수도 아누라다푸라로 들어갔다. 그들은 왕이 마련해 준 왕궁에 머물렀다. 그러나 나중에 왕은 도시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인 ‘마하메가와나(Mahāmeghavana, 大雲林)’를 승가에 기증하였다. 마힌다는 이곳을 불교의 본부로 삼았다. 그 후 이곳은 유명한 ‘마하위하라(Mahāvihāra, 大寺)’가 되었다.

아누라다푸라 시대

데와남삐야띳사 왕의 통치기에 크고 작은 수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이 새로운 종교는 빠른 속도로 국민에게 전파되었다. 이 시기는 왕의 다른 네 명의 형제들이 각각 여러 지방을 나누어 맡아 다스리고 있었으며, 불교의 영향으로 평화와 화합으로 나라가 번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원전 2세기 중엽, 남인도 촐라(Chola)의 왕자 엘라라(Eḷāla)가 스리랑카에 침입하여 왕을 체포한 뒤, 45년간 이 섬을 통치하였다.

이 시기에 섬의 북쪽 지역은 비록 외국인 통치자의 손에 넘어갔지만, 남쪽 지역인 로하나(Rohaṇa)는 여전히 독립된 상태로 있었다. 이 장기간의 외국인 통치 시기는 결과적으로 스리랑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른바 국가와 불교에 헌신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로하나의 둣타가마니(Duṭṭha-gāmaṇī, B.C. 101~77)는 스리랑카의 초기불교사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적 영웅이었다. 그는 ‘왕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불교를 위해서’ 적과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젊은 둣타가마니의 기치 아래 전 싱할라 민족이 하나로 뭉쳤다. 이것이 싱할라 민족주의의 시작이었다. 종교-국가주의의 일종인 싱할라 민족주의 영향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열광적으로 불교에 헌신했으며, 싱할라 민족 전체가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도가 아니면 인간으로 간주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싱할라 민족은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불교도가 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의 종교적 견해는 ‘불교국가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의 역사에서 최초로 비구들이 공식적으로 정치 분야와 세속의 관심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둣타가마니는 자신의 창에 붓다의 사리를 넣어서 다니면서 싸웠다. 결국 둣타가마니는 외국의 통치자였던 엘라라를 물리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마하투빠(Mahāthūpa, Ruvanvālisāya)를 비롯한 많은 종교적 건축물을 세웠다. 그 뒤 왕위를 계승한 그의 동생 삿다띳사(Saddhā-tissa, B.C. 77~59) 왕도 닥키나기리 위하라(Dakkhiṇāgiri-vihāra, 南寺)를 비롯한 많은 사찰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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