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등소평 오판’ 깨고 미국-베트남 ‘신동맹관계’ 이룬 오바마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미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관계를 열었다. 언론은 이를 오월동주(吳越同舟)로 표현하였다. 吳의 부차(夫差), 越의 구천(句踐)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로도 유명하지만, 10년을 싸우고 1조달러를 투입하여 베트남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양국이 사실상의 동맹관계를 맺었다. 가히 오월동주라 할 것이다. 미국과 베트남은 비록 체제는 다르나 공동의 위협인식을 가지고 있는 ‘준 동맹관계’다. 베트남전에서 캄란 만은 필리핀의 수빅 만과 더불어 핵심이었는데 이제 남중국해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에 단도를 들이대는 미해군의 요충이 된 것이다.
베트남전이 종식된 지 40년이 지났다.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든 것은 2차대전 후 세계를 주도하게 된 미국의 전략가들이 역사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호지명은 1920년대에 이미 국제공산당에 가입하고 중국과 연관을 가졌다. 그러나 호지명이 중공과 연관을 가졌다고 하여 중공의 주구가 될 수는 없었다. 베트남과 중국은 천년을 두고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다. 호지명은 프랑스가 물러나면 미국과 관계를 가지려했으나 OSS의 도노반이 호지명을 공산주의자라고 지목하여 거부했다. 월맹은 인도차이나를 석권하고 말라카해협까지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 1960년대 미국의 동남아와 공산세력에 대한 인식이었다.
동남아에 뒤늦게 개입한 미국이 식민제국 프랑스나 영국의 역사를 더 철저히 연구했더라면 이런 전략적 판단 실수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공산화는 영국이 현지인을 훈련시켜 막아내었다. 싱가포르의 건설자 이광요는 객가의 후손이었으나 캠브릿지에서 교육받은 영국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북진하는 미군이 일정한 선을 넘으면 한국전에 개입하겠다는 중국을 읽지 못한 것은 트루먼의 결정적 실수다. 인천상륙 후에 8군과 10군단으로 나누어 병진한 맥아더의 작전은 작전상의 실책였으나 중공군 개입을 읽지 못한 트루먼의 실수는 국무성, 국방성, CIA 등 미국 안보기구 전체의 전략적 실수였다.
중국과 베트남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월맹이 중국의 주구(走狗)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어야 했다. 실제로 베트남은 1975년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79년에 중국과 전쟁을 치뤘다. 한 수 가르쳐준다고 덤벼든 중국은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 도사(導師) 등소평의 전략적 실수였다.
이제 미국과 베트남은 사실상 동맹관계가 되었다. 동북아에서 한국이 미국의 교두보라 한다면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미국의 교두보다. 한국이 방위를 위해서 돈을 더 내라고 하는 트럼프 등은 어이없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한국이 미국의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공개하여 떠들기는 내켜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미국 국민을 계몽시키는 것은 전문가, 언론의 책임이다.
남중국해를 내해화(內海化)하려는 중국의 욕심은 베트남으로서 지나칠 수 없었다. 중국의 전략가들은 베트남과 미국이 오월동주의 목표는 중국을 향하고 있음을 처절히 깨달아야 한다.
오월동주는 바로 중국이 만들어낸 고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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